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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양산사람’의 의미
오피니언

‘양산사람’의 의미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10/09 10:38 수정 2012.10.19 02:59





 
↑↑ 김동현
문학박사
양산문인협회 회장
양산여고 교사
 
올해 4ㆍ11 총선 기간 중, 당시 윤영석 후보와 송인배 후보 사이에 양산사람 논쟁이 있었다. 선거 결과는 52.3% 대 47.7%의 근소한 차이로 윤영석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면 이것을 ‘토박이론’이 승리한 것으로 등가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여야의 첨예한 대립 구조 속에서 지역 정서의 다소간 우위에 의한 결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양산사람’의 의미를 되새김해 분명히 정의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양산사람’이란 무엇인가? 양산에서 태어난 사람만을 뜻하는 것인가? 또한, 양산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양산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인가?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양산의 지역 정서상 ‘진정한’ 양산사람은 양산 출생이어야 한다는 무의식이 지배했다.

그런데 ‘진정한 양산사람’이라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 양산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진정한 양산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인가? 이는 과거 양산의 지역 의식이 얼마만큼 폐쇄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잘 말해주는 사례라고 본다.

물론 20년 전만 해도,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교직뿐 아니라 대부분의 영역에서, 몇 년 양산에 근무하다가 부산이나 다른 지역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거 양산은 분명, 외부인이 잠시 머물다 가는 정류지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인구의 유입이 가속화 되고 있고, 양산시민 중 토박이의 비율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현 27만의 양산 인구 중 토박이가 차지하는 비율은 20년 이상 지역에 뿌리를 내린 준토박이까지 포함한다 해도 30%에 불과하다. 이는 부산에서 유입해 들어온 필자도 포함되는 수치다. 그 외 외부 유입 인구는 70%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양산의 발전은 외부로부터의 진취성을 가진, 정착한 양산사람들에 의해 주도된 면이 없지 않다. 양산 출생만이 양산사람이라면 양산의 문화는 얼마나 엉성하며 초라한 것이었겠는가?

국가 간의 선진 문화의 수입과 토착화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지금 양산의 예술, 문화, 행정, 사회상은 외부에서 들어온 양산사람들에 의해서 상당수 가꾸어져 왔고 여전히 꽃피워지고 있다.

한편, 정치권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장, 시의원이 양산 출신이었으나, 이제는 예전과는 다르게 외부에서 들어온 양산사람이 당선되고 있다. 유입된 사람들도 양산사람으로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니 예견컨대, 이후 토박이론을 내세우는 자는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당연히 양산에서 오래 살면 자연스레 양산사람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친일 논란을 차치하고, 창원은 그 고장출신이 아닌 동원 이원수 선생을 기리고 있지 않은가? 통영도 마찬가지다. 청마 유치환의 출생지는 거제다. 이들 시는 관광과 문화 자원으로 외부에서 정착한 그 지역 사람들을 적극 발굴하고 활용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청마 유치환을 사이에 두고 통영과 거제 사이에 벌어진 법정 공방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는 양산 출신이 아니면 애써 외면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비경제적이며 비합리적 의식인가?

이처럼 그 지역 사람은 그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뿐 아니라, 산 사람, 살고 있는 사람도 당연히 포함되는 개념인 것이다. 물론, 지역에서 태어나서 타지에 나가 이름을 날리는 고향 사람을 기리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지역에서 태어나서 외부로 나간 사람보다, 오히려 지역에 오래 살면서 현장에서 부대낀 사람들이 그 지역 문화에 끼친 영향이 더 크다.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다른 지역에 나가 산 사람이 지역에 무슨 문화적 영향을 끼쳤단 말인가? 양산에서 태어났으나 떠난 자는, 다시 돌아와 양산에 뿌리를 내려야 양산사람이 되는 게다.

이처럼 단순한 출생이 모든 것을 담보할 수는 없다. 이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태어난 사람만으로 지역인물을 국한한다면 그것은 얼마마한 문화적 손실인가? 물론, 잠시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 양산사람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양산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은 분명 양산사람인 게다.

비근한 예로, 시에서 시비를 세우는 것도 양산에서 태어난 사람의 것만을 세운다. 다시 말하지만, 시비 조성 등 양산에서 출생한 사람을 기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양산에서 산 사람들, 사는 사람들을 기리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들은 양산시에 세금을 내는 진정한 양산시민이다.

시와 의회는 항상 기회 있을 때마다 삶의 질, 문화의 질 제고를 소리높이 외친다. 행정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양산시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외부에서 들어와 양산에 정착한 70% 이상의 양산사람들을 무시하는 행정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이런 점에서 분명히 공무원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양산 출생의 역사적인 인물을 찾을래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면 지금의 사람도 역사적 평가를 거쳐 역사적 인물이 된다. 그러니 현재의 양산인에게도 더 많은 관심을 쏟아 현재적 삶의 질을 높여주어야 하며, 더 큰 역사적 인물이 되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그 개인에게만의 이득이 아니오, 양산 전체의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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