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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수색(水色)으로 가며
사회

수색(水色)으로 가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10/09 10:57 수정 2012.10.09 10:58




수색(水色)으로 가며 - 고형렬

나는 매일 밤 수색으로 가는데 수색은 보이지 않는다

모래내를 지나 '수색' 표지판 밑으로 들어가지만

여기가 수색 같지는 않다

수색은 이곳이 아닐 것이다 수색이란 말만 있을 뿐이지

붙어 있을 뿐이지 수색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수색이라 하여도

안개가 낄 때 눈이 내릴 때

내가 매일 밤 수색으로 가면서

왜 내가 수색에 다다르지 못할까?

날이 갈수록 낯선 이곳 행정과 기사들이 수색이라 하지만

결코 수색이라고 수긍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수색은 이런 곳이 아니다 수색은

이렇게 화려하지 않은 곳이다

거기는 적어도 태백 같은 산이 있고 석탄이 캐지고 삶 천지요

그리고 몇 개 상점에

철사로 걸린 남포등이 어둠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서울의 일부

아무런 꿈도 무서움도 없는 천박하고 저 더러운 식민의 부스럼이다

나는 매일 밤 수색으로 가면서

여하튼 수색으로 가지 않는다

수색은 지금 어느 어둠 속에서

가명으로 누명으로 앓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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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이 시는 끊임없이 수색을 찾아가지만, 원하는 수색을 이미 상실했다는 허무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수색은 얼핏 ‘물건이나 사람을 찾기 위하여 조사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수색(搜索)으로도 읽히는데요, 이 시에서 수색(水色)은 물빛을 뜻하는 것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성, 혹은 잃어버린 고향을 찾기 위해 사용한 것 같군요.

시인이 지향하는 수색은 ‘태백 같은 산이 있고, 석탄이 캐지는 삶’의 공간입니다. 그러나 시인이 서 있는 현실적 공간은 ‘아무런 꿈도 무서움도 없는 천박하고 더러운 식민의 부스럼’인, ‘서울의 일부’. 수색(水色)을 수색(搜索)하는 ‘나’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도시 안에서 헤매고 도시 안에서 출구를 찾는.

자욱한 ‘안개’와 ‘눈’처럼 차가운 것들만 가득한 곳에서 진정한 삶의 공간인 수색(水色)을 발견하기란 아마도 요원한 일일지도 모습니다. 시인들이 시를 쓰는 것도 그래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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