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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공자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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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교육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10/16 10:34 수정 2012.10.16 10:35




↑↑ 성호준
영산대학교 동양문화연구원장
세상 사람들이 흔히 공자(孔子)를 평가할 때 위대한 사상가인 동시에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라고 한다. 스승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공자는 무엇보다도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후세 교육의 중요성과 교육관을 공자는 논어(論語) 곳곳에서 말하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구절이 논어의 첫 머리에 나오게 된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공자의 교육관은 논어의 세 구절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후생가외(後生可畏), 유교무류(有敎無類) 그리고 군자불기(君子不器)가 그것이다. 공자는 ‘후생가외’를 통하여 교육의 무한한 가치를 설파하고, ‘유교무류’를 통하여서는 차별 없는 교육의 실현을 말하고 있으며 ‘군자불기’를 통하여서는 공자가 지향하는 전인교육의 방향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후생가외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공자는 “뒤에 태어난 이들이 가히 두려울 만하니 어찌 앞으로 오는 자(後生)가 지금만 못할 것을 알겠는가?(後生可畏)”라고 하였다. ‘후생’은 뒤에 태어난 사람으로 연소자나 후배 후진 등을 가리키는 말로 선생(先生)의 반대말이다. ‘두려울 만하다’는 것은 두려워할 정도로 존경하고 가치를 인정하다는 말이다.
 
젊은 세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의 희망이다. 언제나 창의적인 사고와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은 젊은이들의 몫이었다. 그러므로 공자는 젊은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지 말고 심혈을 기울여 인재를 교육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하였다.

창의성보다는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 학생들의 다양한 개성과 역량을 존중하기 보다는 무한경쟁으로만 내모는 교육시스템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우리는 후속세대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적 능력에 대한 두려울 정도의 존경심을 지니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후속세대 교육을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에 대한 두려움을 지녀야 할런지도 모른다. 그만큼 교육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유교무류의 가르침이다. 공자는 “가르침은 있으되 차별을 두지 않는다(有敎無類)”라고 말하였다. 사람이 타고난 본래의 성품은 모두 선한데,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잘못된 습관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을 가르치면 모두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으로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통한 인격완성의 교육을 이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는 춘추시대 당시 관(官) 중심의 소수 엘리트 교육에서 벗어나 원하는 사람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민간 중심의 사학을 창시하였다.

공자의 학교는 한때 많게는 3천여명의 제자를 길렀다고 한다. 3천여명의 공자의 문하에는 많은 가난한 자와 천한 자가 부자나 귀족들과 더불어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니 ‘유교무류’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교육의 공공성 문제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비싼 대학 등록금과 사교육비, 학교 폭력 등 경제적, 사회문화적 이유로 교육현장에서 교육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골고루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대한 반향인지 무상급식과 대학 반값등록금 등 교육복지에 관한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이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균등하여야 한다는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이 ‘유교무류’이다.

세 번째는 ‘군자불기’인데 공자는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라고 말하였다. 군자는 지식과 덕성이 서로 원만한 조화를 이룬 전인적 인격의 소유자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갖춘 이를 뜻한다. 군자는 공자 교육의 지향점이다.

그리고 그릇이란 각기 그 용도에 적합하게 만들어지며 일정한 용량과 경계를 가지고 있다. 군자가 그릇이 아니라는 것은 ‘자신의 영역과 생각만을 고집하며 거기에 얽매이는 존재가 아니다’는 뜻이다. 흔히 자신의 이익을 밥그릇에 비유하곤 한다.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말이 있듯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이 보통 사람의 생리라 할 수 있다.

공자가 바라는 교육은 자신의 이익에만 충실하여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그릇형 인간’을 양성하는 데 있지 않다. 공자는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 즉 정의로움을 우선시하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되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군자를 기르고자 한 것이다.

공자가 바라는 군자는 모든 사람과 화합할 줄 알며 사사로운 이익을 위하여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소인배와는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군자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미더운 사람이다. 이러한 군자를 기르기 위한 교육은 어떤 교육일까?

공자는 군자의 학문으로 육예(六藝)를 주창한다. 육예는 지식위주의 좁은 교육이 아니라 감성과 덕성 그리고 체력이 뒷받침된 전인교육이라 할 수 있다. 공자가 말한 육예의 내용은 예(禮 : 예의)ㆍ악(樂 : 음악)ㆍ사(射 : 활쏘기)ㆍ어(御 : 말타기)ㆍ서(書 : 글쓰기)ㆍ수(數 : 수학) 등이다. 다양한 감성을 계발하고 신체를 수련하며 정확한 판단력과 예술성 그리고 상대에 대한 예의를 골고루 갖추기 위한 교육이 육예이다. 육예의 교육은 포용력과 창의력을 갖춘 인재 즉 ‘군자불기’를 위한 교육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공자의 교육에 대한 주장을 살펴보았다. 물론 2600년 전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와 우리가 사는 21세기 대한민국은 여러 방면에서 차이가 있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말이 유용하게 들리는 것은 공자가 말한 교육이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에 근본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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