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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겨울에는 겨울에 어울리는 삶이 있다..
오피니언

겨울에는 겨울에 어울리는 삶이 있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10/23 10:15 수정 2012.10.23 10:15



 
↑↑ 조광수
정치학 박사
평화반핵군축시민연대 상임위원장
전 영산대 교수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늦가을은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계절이다. 인생으로 치면 쉰 초반 정도의 느낌이다. 멋도 있고 깊이도 있지만 허전한 나이다.

그런 나이인 쉰을 지비(知非)라고 한다. 인생과 세사의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알고 스스로 성찰을 할 수 있는 나이란 뜻이다. 자신이 겪은 모든 좌절과 굴욕과 절망의 원인이 타인 탓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나이이기도 하다. 과연 살아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자신만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시기이다.

늦가을과 쉰의 나이를 서두에 꺼냈지만 ‘낭만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제 하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다. 한국의 2012년 상황이 계절로 치면 늦가을이고 인생으로 치면 쉰을 넘긴 시기란 뜻이다. 모든 사물은 유전(流轉)한다. 사람도 변하고 세상도 변한다.

가을이 깊어 가면 겨울이 오게 마련이고, 그 순환은 계속 이어진다. 그런 순환의 이치로 볼 때 우리는 지금 화려한 시절이 가고 있고, 되돌아보며 한숨 쉬어 갈 대목이란 말이다. 결론부터 거칠게 말하면 춥고 긴 겨울을 대비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한 시점을 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부터라고 한다면 금년은 꼭 50년이 되는 해다. 인생의 지비에 해당하는 시점이고, 계절로 치면 늦가을이다. 지난 50년 동안 만들어져 온 한국의 현대를 되돌아보며 성찰도 하고 쉼표도 찍고 자신만의 소리를 듣고 내야 할 대목이다.

현대 한국, 참 대단하다. 격동의 세월이었다. 5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이른바 20-50클럽(인구 5천만 명에 2만 달러의 소득 수준인 나라)에 7번째로 가입했다. 압축적인 경제성장과 정치발전의 결과물이다. ‘하면 된다’는 역동성과 성마른 대중 민주주의의 불안정성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만들어 낸 성취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듯 20-50이 40-50(인구 5천만 명에 소득 수준 4만 달러)까지는 되도록 더 힘을 내야겠지만,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이제는 무리하게 앞만 보고 달리기 보다는 애써온 스스로를 위로하며 느긋하게 한숨 돌려야 할 시기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갈증을 낳은 이유도 따져보고, 전 국민이 세대별로 불안하고 불만스러운 사연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다가올 엄혹한 추위에도 대비해야 한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성장신화가 끝났다는 사실이다. 내일 갚아지겠지 하며 정부는 정부대로 가계는 가계대로 빚을 내어 신나게 소비하던 가불경제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듣기 좋게 신용경제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내일을 당겨 가불해서 써온 것인데, 이제 그나마도 여기까지다.

화려한 가을 잔치는 끝났고, 차근차근 다들 과소비 계산서를 정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성장신화와 대중 민주주의가 결합되어 만들어져 온 거품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 투덜거리거나 남 탓할 것 없다. 정부재정과 가계 모두 알뜰하게 절약하여 저질러 놓은 빚부터 갚아야 한다.

그렇게 거품을 걷어내는 작업은 꽤나 오래 걸릴 것이고,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세계 총 GDP의 10배가 넘는 신용자산이 정상적인 수준으로 정돈되어야 하고, 우리의 1천조 원이 넘는 가계 빚도 웬만큼 정리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산 가치는 하락하고, 소득은 줄고, 일자리는 더욱 불안해진다. 세계적으로 곳간이 비어 가는데, 실물은 없는 신용만 키워온 대가를 처절하게 지불해야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은 피할 수 없는 겨울을 견디는 마음가짐이다. 인생의 어처구니없음과 삶의 아이러니는 반전을 경험할 때 느끼게 되는데, 이를테면 술이 있을 때는 잔이 없고 잔이 있을 때는 술이 없는 경우다.

말하자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데 마음은 빈궁한 경우다. 현대 한국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명품과 다이어트와 성형이 유행하는 사치스런 사회지만, 다들 행복해하지 않는다. 그저 불만스럽고 불안할 뿐이다. 연민과 배려보다는 누군가를 미워하며 분노하고 있다. 게다가 집단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그저 힐링(위로와 치유)만 구하고 있다. 참 딱한 일이다.

하지만 물질적 궁핍이 오히려 정신적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데 인생의 묘미가 있다. 사람은 꺾여봐야 성숙해지고, 사회는 어려워져봐야 품위를 귀하게 여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스산한 늦가을도 즐길만하고, 늙어가는 몸도 고마운 것이다. 

겨울은 쉬는 시간이다. 겨울엔 겨울에 맞는 삶의 태도가 있다. 확장 지향적 삶에서 축소 지향적 삶으로, 낭비의 삶에서 검약의 삶으로 생활 모드를 전환해야 한다.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고 윤리성이나 당위성에 투영하여 반성하는 성찰의 시간으로 만들면 된다. 

넘어진 길에 쉬어간다고 이참에 큰 비용 안 들고도 즐길 수 있는 취미도 개발하고, 각박했던 마음도 다듬고, 소원했던 인간관계도 복원하면 좋겠다. 행복은 의외로 담백하고 소박한 일상에 있다. 검박한 생활 속에서도 고래 잡으러 동해바다로 휘익 떠날 수 있는 큰 자유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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