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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생각에 따라 보는 눈 때문에 생긴 병..
오피니언

[화요살롱]생각에 따라 보는 눈 때문에 생긴 병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11/13 10:02 수정 2012.11.13 10:03





↑↑ 신현경
영산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결핍 때문에 생긴 집착
집착의 대상은 다양하다
반복되는 회피와 방어는
냉전 혹은 싸움으로 발전
하지만 싸움 피해선 안돼
맞닥뜨려 풀어나가야 한다


한 때 살았던 주상 복합아파트 아래 주차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차장은 매우 넓은 3층으로 되어 있었다. 그날은 시간에 맞추어 지하 3층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전날에 주차했다고 생각한 왼편 구석에는 차가 없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다른 층의 왼편 구석도 돌아보았다. 역시 차는 없었다. 이번에는 지하 3층에 있는 모든 차들을 뒤져보았다.

그러나 없었다. ‘누가 훔쳐갔나’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10년이나 되어 워낙 허술해 보이는 차다. 누가 훔쳐간 것은 아닐 것 같았다. 그제야 남편한테 전화해보았다. “어제 당신이 가지고 나갔던 차는 오늘 아침에 세원이가 가지고 나갔어”

내가 주차했다고 생각했던 곳에 있던 차는 남편 차로 이미 아들이 가지고 나갔으며 내 차를 주차해 놓은 곳이 아니었다. 내 차는 그 곳이 아니라 며칠 전 어딘가에 주차해 놓았던 것이다. 이제는 왼쪽 구석을 포기하고, 다시 3층 전체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보였다.

마음을 한 곳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딘가에 있었던 차를 다른 곳에서 찾으니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을 수밖에. 결국 차를 찾기는 하였지만 공기도 안 좋은 곳에서 30분 이상을 헤맨 후라 지쳐서 수업에도 늦어 제대로 못하고, 다음 날은 감기 몸살에 걸려 눕고 말았다.

이 경험은 나와 남편과의 관계를 연상시켰다. 그동안 남편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자꾸 달라고 하였으니. 집착이라고 하는 개념이 가슴을 두드렸다. 자신이 원하고 있는 한 곳만을 바라보고 찾았다. 없는 곳에서 30분을 찾다가 감기몸살을 했는데 인생의 반을 없는 곳에서 찾아 헤매었다. 그러니 몸도 마음도 아팠다.

집착은 이와 같이 상대한테 없는 것을 자신이 보려고 하는 것만 찾는다. 이는 어렸을 때의 결핍 때문이며 늘 커서도 따라다닌다. 내 경우는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아파서 젖이 모자라서 생겼다. 아무리 먹으려 해도 엄마의 젖은 부족했던 것이다. 이 결핍을 심리학을 전공한 불교도인 콘필드는 ‘Hungry Ghost(餓鬼, 아귀)’라 하였다.

집착의 양상은 다양하다. 돈이 되기도 하고 명예와 권력, 그리고 사랑마저도 집착이 된다. 보통 집착하는 대상은 가족이 된다. 사랑의 이름으로 공부에 마음이 없는 아이한테 공부하라고 하고, 돈 버는 재주가 없는 남편한테 돈 벌어 오라고 하게 된다.

엄마의 집착에 아이는 회피만 익히게 된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 결혼하면 상대방의 집착에 회피한다. 그러니 회피도 동전의 양면과 같이 집착의 다른 양상이 된다. 집착의 대상은 회피나 방어를 하게 되었던 부분에서는 집착하게 되어 상대방이 회피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상대방이 집착하여 방어하면서 회피하게 되어 있다. 시간적 차이와 엇갈림이 있을 뿐이다.

가족 안에서는 이러한 관계로 인하여 매일 부딪치게 되어 있다. 이러한 관계를 반복하게 되면 집착과 회피는 더욱 강화되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나이 들어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하지 못하고 습관은 고착화되고 서로에게 대응 방식, 즉 사는 모습이 된다.
 
집착의 대상은 회피나 방어를 하게 되고 소통하는 것이 두렵다. 이 회피를 만나게 된 집착은 조절할 수 없는 화로 폭발하게 되어 있다. 안으로 삭히는 냉전이 되거나 바깥으로 드러나는 파괴적인 싸움이 된다. 

거기에 자존심까지 곁들여지고 안에서 싸우건 바깥으로 드러나건 끝없는 싸움이다. 회피에 익숙해질 수 있거나, 끝없이 자신의 집착을 분출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변화의 계기도 없는 것이다. 자신 안에서 문제를 보지 못하고 끝없이 바깥으로 투사하여 남 탓만 하게 된다. 결국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 소외에 빠져 살게 된다.

이 불가피한 싸움에 피할 것이 아니라 우선 싸움이라도 해야 한다. 싸움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지 말아야 해결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아주는 것, 그리고 서로에게 없는 것을 상호 보충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 날 수 없는 하나의 인간이다. 부족한 게 많았기 때문에 미술로 하는 자기표현과 치유에 관심을 가져왔나보다. 그림 속에서 집착을 보기는 했어도 떨어뜨려 내기가 쉽지 않다. 자기연민에 빠져 남 탓만 하고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이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 싶다. 변화와 조화를 향해 가고 싶다. 혼자는 지치고 잊어버리게 되어 익숙한 습관에 매몰되기 쉽다. 우리들의 약속이 되어 좀 더 밝은 세상으로 가고 싶다.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어 이렇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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