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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녀 시인ㆍ수필가 2009년 월간 <한비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회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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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들의 재롱으로 한나절을 보내고 나니 점심때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섬진강변에 있는 한 식당으로 가서 겨울에만 맛 볼 수 있다는 눈치 회를 주문했다. 한 상이 거하게 차려지고 싱싱한 회와 여러 가지 반찬이 나왔다. 그러나 나는 그 귀하다는 눈치회보다 밑반찬으로 나온 쑥부쟁이 나물에 더 젓가락이 갔다. 봄에 뜯어 말려 두었다 겨울에 먹는 쑥부쟁이 나물은 향기와 맛이 일품이었다. 나물반찬에서 봄이 피어나듯 향기롭고 부드러웠다.
주인아주머니의 눈치를 보아가며 두 접시를 더 달라 해서 먹었다. 제법 많이 나온 점심값을 주머니를 털어 내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그 나물만 생각났다. 봄이 오면 꼭 고향 들녘에서 쑥부쟁이를 뜯어 말려서, 추운겨울에 고향의 봄 향기를 맡는 근사한 식탁을 차리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도록 쑥부쟁이가 돋아나는 봄의 고향은 찾지도 못했다. 직장 일, 집안일에 농사를 짓는 우리 집 역시, 봄이면 휴일에도 농사일을 거들어야 하기에 친정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가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남풍이 아지랑이를 앞세워 팔랑팔랑 걸어오면 언제나 마음만 고향에 간다. 들판에 지천으로 돋아난 쑥부쟁이를 한바구니 뜯어, 온갖 양념을 넣고 오물쪼물 무친 나물반찬으로 부모님의 저녁상에 봄 향기를 가득 차려 드리고 싶고, 부모 형제들과 오붓한 저녁시간을 보내던 때가 그리워도, 몸은 일상에 붙잡혀 마음만 고향땅 언저리를 맴돈다.
어린 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면 받는 새 책 냄새가 좋아 코를 킁킁거렸다. 국어책의 첫 머리에서는 언제나 역동하는 새봄을 노래했다. 그 때쯤이면 고향에는 찬 북서풍이 잦아들고 햇살이 도타워졌다. 양지바른 언덕 밑에서는 제일 먼저 봄기운을 알리는 쑥부쟁이가 돋아났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으레, 바구니 하나 들고 쑥이며 냉이며 쑥부쟁이를 캐러 다녔다. 농사일로 바쁘신 어머니를 대신해 식구들의 저녁밥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형편에 찬거리를 사다 먹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다행스럽게도 사립문을 열고 몇 발자국만 나가면, 논두렁 밭두렁에 나물이 지천으로 널려있어 30분정도 만 뜯어도 반찬 한 접시는 거뜬히 만들 수 있었다.
그때 제일 많이 돋아나던 나물이 쑥부쟁이였다. 지금은 쑥부쟁이라 부르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는 ‘시부쟁이’라 불렀다. 그 말의 어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약간의 쓴맛이 있어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비슷한 식물들이 많아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되고 비슷한 종류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쑥부쟁이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초로 건조하거나 습기가 있는 곳, 어디든 잘 자란다. 꽃은 7, 8월경에 피기 시작하지만 10월까지 계속 피고진다. 쑥부쟁이라는 이름은 옛날 산골마을에 아주 가난한 대장장이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11남매나 되는 자녀들이 있었단다.
열심히 일 하지만 항상 먹고 살기가 어려운 처지였기에, 대장장이의 큰 딸은 동생들을 위하여 항상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쑥나물을 캐와 동생들에게 먹였단다. 이를 본 마을사람들은 큰 딸을 가리켜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 딸’이라고 부르고 딸이 캐는 쑥나물을 ‘쑥부쟁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릴 적에 들판에서 쑥부쟁이 나물을 뜯어 반찬을 만들고 가족들과 먹었기에 마치 내가 그 전설의 주인공과 같은 생각이 들어 쑥부쟁이에게 더 많은 애착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는 10여 종류의 쑥부쟁이가 있다고 한다.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쑥부쟁이와 들판에서 보게 되는 개쑥부쟁이 그리고 바닷가에서 만나는 것으로 바닷바람을 이기느라 해국처럼 잎의 양면에 털이 많은 갯 쑥부쟁이,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로 부지깽이 나물이라 부르는 섬쑥부쟁이가 있단다.
울릉도 사람들은 섬쑥부쟁이라 말하면 잘 모르고 부지깽이 나물이라고 해야 알아듣는단다. 부지깽이 나물은 주민들의 주 소득원이기에 울릉도에서는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고, 길가나 숲속 어디든지 야생 섬쑥부쟁이를 만날 수 있다한다.
한들거리는 섬 쑥부쟁이 꽃을 만나러 바람 부는 어느 가을날 울릉도에 가고 싶다. 파란 하늘아래 쑥부쟁이 꽃이 만발한 길가에 앉아, 보랏빛 추억 하나 가뭇없는 바다위에 수놓을 수 있는 날을 꿈꾸어 본다.
그 외에도 비슷한 미역취, 벌개미취, 구절초, 개미취 등 모양과 꽃이 비슷한 것들이 많아 세세하게 살피지 않으면 종류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특히 요즘은 가을들길을 걷다 보면 안개꽃처럼 하얀 꽃이 피어 길가를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데, 그 식물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미국 쑥부쟁이였다. 먼 태평양을 건너와 마치 제가 주인인 냥 의기양양하게 터를 잡고 기세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마치 황야의 무법자 같아 보인다.
한삼덩굴,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가시박, 미국쑥부쟁이 같이 외국에서 건너와 우리나라에 자리 잡은 귀화식물들이, 우리 토종식물의 생육을 방해하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 유해 귀화식물에게 아름다운 우리강산을 내주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춘궁기에는 요긴한 찬거리였던 나물로, 여름이면 소의 양식으로 살다가 가을이면 해맑은 가을 여인으로 피어나는 소박한 꽃 쑥부쟁이, 세월 따라 변해가는 생태계를 미약한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지만 미국 쑥부쟁이에게 온 들판을 다 빼앗겨 내 고향에서 우리 쑥부쟁이를 영영 볼 수 없게 될까 걱정이다.
보잘 것 없는 풀포기지만 그 이름에는 싱그러운 풀빛 유년의 추억이 있고, 누렇게 알곡이 익어 넘실거리는 풍요로운 고향의 가을이 있다. 우연히 먹게 된 나물 한 접시에서 찾게 된 옛 기억이 연보라색 쑥부쟁이 꽃으로 가슴에 피어 온종일 살랑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