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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양산의 뿌리를 찾아서
웅상의 동쪽, 병풍처럼 뻗은 웅장한 산세와 절경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2/12/11 10:56 수정 2012.12.11 10:57
유적(지명)으로 보는 향토사 ⑨ 대운산(大雲山) 과 탑골 유원지





↑↑ 양산 8경의 하나로 지정된 대운산과 탑골저수지.
대운산(大雲山)은 웅상지역 동쪽에 있는 산으로 북쪽의 용당동에서 삼호동, 명동, 매곡동을 품에 안고 남쪽으로 뻗어 있는 산이다. 산의 높이는 해발 742m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정상 전체가 완만하여 매우 웅장한 느낌을 주는 산이다.


왜군 막기 위해 쌓은 대운산성


산 넘어 동쪽에는 울주군과 기장군이 접하고 있으며 유서 깊은 장안사와 척판암이 있어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의 흔적이 깃든 곳이다.

원효대사가 이곳 대운산 아래 암자에서 서쪽하늘을 혜안으로 바라보니 당나라에 있는 법운사에 천명의 신도들이 불공을 하고 있는데 천벌을 받아 그 절이 무너질 위기에 있었다. 그 절이 무너지면 그 안에서 공부하던 사부대중이 죽음에 이를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때 원효대사가 ‘해동원효(海東元曉)’라고 새긴 판자를 그 절을 향해 던지니 당나라에 있는 그 절 주위가 금빛으로 변하였다. 신도들은 환한 금빛을 보고 이상히 생각하여 모두 밖으로 뛰어 나오자 그 절은 무너지고 신도들은 목숨을 구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원효대사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고 그 암자의 이름도 척판암이 되었다.

생명을 구한 그들은 원효대사를 찾아 동방으로 오게 되었고, 원효대사는 그들을 데리고 원적산 화엄벌에서 화엄경을 설 하면서 천명의 제자를 길러내었다. 그래서 그 이름도 천성산(千聖山)이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은광을 심었다하여 이 산을 불광산(佛光山)이라 불렀고 지금의 대운산은 동해로 침입하는 왜군을 막기 위하여 산중턱에 쌓은 성(城)이름이 대운산성이었므로 거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탑골계곡에 축조한 대형 저수지


탑골은 대운산 북쪽 입구 용당동에 있는 계곡을 말한다. 일명 절골 또는 탑자골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이곳에 큰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계곡에는 깨진 탑 조각들 즉 탑신(塔身), 탑두(塔頭), 탑좌대(塔坐臺)등이 흩어져 있었다. 봄과 가을이면 이곳 경관이 수려하여 관광객이 끊이지 않았고 계곡이 깊어 물이 마르지 않았다.

이곳에 저수지가 만들어 지면서 명소가 되기 시작하였다. 1933년 일제강점기때 농사용 저수지를 만들어 용당 들판의 농업용수를 전부 해결하였다. 해방 후에는 양산수리조합에서 관리해 오다가 지금은 수리조합이 한국농어촌공사로 바뀌면서 한국농어촌공사 김해·양산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못은 소류지가 아닌 대형 저수지로서 지금은 농사용보다 관광명소로서의 운치를 더해준다. 저수지가 크고 웅장하면서도 물이 맑고 울창한 산림으로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보듯이 아름답다. 더구나 주변에 벚꽃을 심어 봄이면 상춘객이 이어 지고 있다. 그런 관계로 탑골 계곡이 2000년 6월에 대운산 탑골 유원지로써 양산 8경의 한 곳으로 지정되었다.

↑↑ 대운산자연휴양림 내에 있는 방갈로식 숙박시설인 숲속의 집, 7인실과 10인실이 있다.


자연휴양림 조성해 관광자원화


1997년 9월에 이곳을 자연휴양림조성지구로 고시했다. 이후 240㏊ 규모의 휴양지를 조성하기 시작하여 2009년 7월에 완성을 보았다. 숲길을 만들고 숲속의 집을 지었는데 7인 수용 가능한 집이 6동(棟) 10인 수용이 가능한 집이 5동 등 모두 11동의 집이 지어졌고, 크고 작은 회의실 2개와 생활관을 갖춘 휴양관 1동 등 제법 아담한 휴양시설을 만들어 놓고 있다.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으로만 신청이 가능하고 매 분기별로 분기 전월에 신청하여야 된다고 한다. 계절에 관계없이 이용객이 항상 끊이지 않고 있으며 특히 여름 성수기에는 이용객이 밀린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탑골휴양림을 찾아 즐기고 있는 것이다.

↑↑ 찾는이가 없어 휴관상태인 공인박물관.


사설 박물관 아깝게 휴관 들어가

대운산 탑골유원지 상부에 어느 스님이 개인 박물관을 개관했다. 2천400여평의 부지에 900여평의 전시실을 갖추고 설립자 스님의 별호를 붙여 ‘공인(空印)박물관’이라 명명하였다.

이곳에 전시된 유물은 주로 불교유물들로 되어 있으나 공예품, 민화들도 상당수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는 국보급에 해당하는 보물도 있다고 한다. 특히 1682년(숙종8)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여비고(東輿備攷)’의 원본이 소장되어 있다. 동여비고는 우리나라의 전국 지형은 물론 일본까지 아주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조선중기의 사찰은 물론 암자까지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어 그 시대 사료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라 할 수 있다.

이 박물관에는 현재 약 7천여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홍보가 부족해 찾는이가 드물고 관계기관의 지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사실상 휴관에 들어가 매우 안타깝다. 소장된 유물들은 모두 우리 문화인데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관계기관에서 관심을 가지고 박물관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리하여 대운산탑골유원지가 박물관과 함께 또 하나의 휴식과 문화의 공간으로 되게 함이 어떨는지?

 
↑↑ 정동찬
양산향토사연구소장
 
자료: 양산시지/2004. 양산시지편찬위원회
           웅상읍지/1995. 웅상읍지발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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