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쪽으로는 낙동강과 접한 호포로부터 북동으로 읍내에 이르기까지 3백만평이 넘는 들판은 작황이 형편없었던 옛 조선시대부터 메기들(타어평, 鼉魚平)으로 불렸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대규모의 경지정리사업 추진 결과 양산을 대표하는 곡창지대로 발전했다. 양산천과 북부천 등을 이용한 안정된 용수 공급과 일조량이 풍부한 기후조건, 거기에 기계영농이 가능한 대단지화 효과까지 겹쳐 매년 벼농사의 풍작을 이어왔다.
메기들과 양산천은 추억이 깃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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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시 조성사업 이전의 양산들 모습(1995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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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용수로는 지금의 운동장 주차장 자리를 지나 양주초 옆으로 흐르는 중앙 용수로와 만나는데 범어에서 내려오는 새들천 등 몇 개의 수로와 함께 농업용수로 부족함이 없었다.
한때 위세를 떨쳤던 양산의 논농사는 신도시 조성사업과 함께 침체일로를 걷게 되고 수세(水稅)를 받던 농지개량조합도 규모가 축소돼 김해로 합병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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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시 1단계 사업이 준공된 시점에서 찍은 모습(2008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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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기슭에 조성된 대규모 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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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금읍 범어리 일대에 택지조성사업이 착수된 모습(1995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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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지 조성이 완료된 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범어리 일대(2008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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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공사에서도 1989년 630세대 규모의 주공 1차 아파트를 준공한 이래 3차례에 걸쳐 5층짜리 아파트 수십 동을 건립해 무주택자들의 보금자리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주공 1차 아파트가 심의를 통과해 재건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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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찬 양산향토사연구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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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사진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