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손병호 남강역리연구원장 | ||
ⓒ |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미신 타파에 주력했다. 박 전 대통령이 역점을 둔 또 다른 사업은 이순신 장군을 성인화(聖人化)하는 일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순신 장군은 주역 점을 자주 쳤다. 주요 국면마다 맑은 정신으로 좌정해 주역 점을 치는 모습이 <난중일기>에 자주 나온다.
주역은 미래예측의 특성으로 고대의 지도자들에게 국가를 통치하고 인륜을 진작하는 경전으로 신성시됐다. 박학다식한 박 전 대통령이 몰랐을 리가 없지만, 사술로 혹세무민(惑世誣民) 하는 무속인들과 부도덕한 일부 점술가들로부터 서민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하고 싶다.
공자는 “깨끗하고 고요하며 정치하고 미세한 것이 역의 가르침이다”고 했다. 어떤 현상이 나타날 때는 반드시 미세한 조짐이 나타나니 언제나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해야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허나 조짐만 파악해서야 일이 될 리가 없다. 그 계획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조달하고 집행하는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조짐의 파악은 합리성과 결합돼야 한다,
조짐만 맹신하여 합리성을 잃는다면 주역을 읽지 아니함만 못하다. 이런 점에서 장군은 전시라는 예측불가의 상황에서 주역 점의 조짐을 합리적으로 잘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점술 행위가 아니라 점을 치며 늘 다음 단계를 헤아리는 유비무환의 정신이 돋보인다.
올해는 계사년이다. 십이지 중에서는 뱀이고 오행 상으로 계는 물, 사는 불에 해당된다. 위는 물(坎)이고 아래는 불(离)이다, 주역 64괘 중에 기제(旣濟)괘에 해당된다. 기제는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상태라 형통하다고 본다. 기제의 초구는 ‘바퀴를 끌며 꼬리를 적시니 허물이 없다’고 말한다.
바퀴를 끈다는 것은 천천히 간다는 뜻이다. 꼬리를 적신다는 말은 다음에 발 디딜 곳을 미리 파악하여 조심스럽게 물을 건넌다는 뜻이다. 흔히 일이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긴장이 풀려 해이해지거나 가볍게 생각하기 쉽다. 바로 그때 실수가 생기는 법이다.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임기 첫 해다. 여성 특유의 신중함으로 바퀴를 끌며 조심스럽게 나아가길 바란다. 보여주기 위한 급진적이고 과시적인 정책은 서민들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목하 어려운 서민경제는 새로운 정책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차라리 기존 정책의 장점을 잘 살리고 경제의 구멍 난 부분을 꼼꼼히 챙겨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손수 때워주는 따뜻한 정치가 금년도 화두가 돼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변화를 거부하자는 말은 아니다. 니체는 “허물을 벗을 수 없는 뱀은 파멸한다”며 낡은 사고의 허물은 벗어버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계사년은 우리 모두에게 신중함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한 해가 돼야 할 것이다.
- 손병호 남강역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