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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승 개운중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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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매년 겨울방학 직전에 전 학년 합창대회를 개최해왔는데, 올해는 과목 집중이수제의 시행으로 음악시간이 3학년에만 배정되어 있어 3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합창대회가 개최됐다.
개최시기가 1년의 마지막 순간에 그것도 크리스마스 시즌과 맞닿아 있다 보니 의례히 합창곡으로 졸업에 대한 아쉬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 크리마스 기분을 낼 수 있는 곡들이 불리어지곤 했다.
내가 맡은 반도 역시 우리 반의 상황을 재미있게 개사한 노래를 먼저 부르고, 졸업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곡을 메인곡으로 불렀다. 기대 반 설렘 반의 심정으로 듣고 있었는데 그만 주책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필자는 아이들에게 간섭을 많이 하는 교사 중 한 명이다. 심지어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아이들이 많이 버거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애정이고, 관심이다”라는 말로 포장하며 아이들을 괴롭히곤 했다.
특히 합창대회가 다가오면 아이들을 다그치기 시작하면서 혼자 조급해 발을 동동 구르며 연습을 시켰다. 올해도 예년과 다르지 않아서 제 버릇 개 못 주고 여전히 그렇게 하는데, 우리 반 애들이 너무 못하는 거다. 그 정도가 심할 정도로. 게다가 연습할 때 진정성도 보이지 않아 많이 실망했었다.
그래서 “올해 합창은 망쳤구나”하며 짐짓 포기하고 있었던 차였다. 근데 웬걸 막상 무대 위에 올라간 우리 반 애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매우 열심히 준비해서 정말 멋들어지게 합창을 해내었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 필자는 무한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반이 합창을 잘해서 상을 받아 감동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들에게 또 한 수 가르침을 받아서 기쁘고 감동스러웠던 것이다.
교사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이 옳다고 그것에 아이들을 억지로 쑤셔 넣으려 하고, 거기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을 보고 실망만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그 틀을 벗어나 자기들 스스로 훨씬 크고 멋진 틀이 만들어서 교사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우리 반 애들이 준 머리가 멍하고, 가슴이 벅차고, 아이들에게 고맙고 등등 복잡한 감정의 여운이 2013년이 된 요즘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요즘 교사들 참 많이 힘들다. 학교현장에서 교권은 무너진 지 오래되었고, 어느새 교사는 수업하고 행정 처리하는 도구처럼 취급되고 있다. 학교, 학부모, 학생 역시 교사를 그런 눈으로 보고 교사들은 그 속에서 점점 위축되고 있다. 업무와 수업이 힘들고, 월급이 많지 않아도 그저 안정된 직장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만족하며 별다른 보람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교사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필자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계사년을 밝혀 준 해돋이 보다도 아이들의 눈망울이 훨씬 희망차고 밝아 보인다.
그 아이들의 미래는 분명 지금보다 밝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 수 있게 한다. 그런 믿음과 희망을 준 아이들이 우리 반 교실에서 선생님인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교사라서 참 행복하다.
보통 합창 연습을 한 달 간 하기에 우리 반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걸 신물 날 정도로 듣는다. 그럼에도 막상 대회날이 되면 어느 정도의 가슴떨림은 있게 마련이다. 그게 합창의 매력이니까? 근데 올해는 그 감동의 폭이 너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