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 물의 집..
오피니언

[시 한줄의 노트] 물의 집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1/08 11:58 수정 2013.01.23 10:48



언니가 죽은 지 열 달 만에

형부는 새장가를 갔다

일 년 만에 만난 그는

물방울 넥타이를 다질링 홍차로 누르고 있다

일곱 살 때 형부로 만난 남자가

눈물 몇 방울로 추억을 버무리는 사이

“오후의 홍차” 창가로 흘러내리는 오후

개업행사 치킨집 앞 피에로는

긴 막대기로 비눗방울을 날리고 있다

닿기만 하면 터지는 물의 집 

저건 어쩌면 비누의 상처가 살고 있는

투명한 집인지도 모르겠다

외면하고 싶었던 시간들이 남천 열매처럼

창가에 매달려 흔들리는 동안

탁자 밑 젖은 발이 아려온다

두 해 겨울을 건너뛴 부츠가

잊었던 기억을 물집으로 달아준 것일까

분노를 삭인 걸음을 숨기며

허공을 내려올 때

기어코 물집이 터지고 말았다

뒤축에서 아린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배옥주 시인

부산 출생. 2008년 서정시학 등단.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포엠포엠> 편집위원. 웹진, <젊은시인들> 동인. 부산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회원

2012년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오후의 지퍼들』(서정시학, 2012)

--------------------------------------------------

 
↑↑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언니와의 사별을 모티브로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상처를 열어 보이는 이 시는, 혈육에 대한 정과 애절한 슬픔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어느 카페에서 ‘언니가 죽은 지 열 달 만에’ ‘새장가를’ 간 ‘형부’를 만났나 봅니다. 그리고는 창 밖 ‘치킨집 앞 피에로’가 ‘긴 막대기’로 날리는 비눗방울을 보며 생의 슬픔과 허무함을 느낀 것 같습니다.

눈물방울을 연상시키는 ‘비눗방울’은 이승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생의 허무를 느끼게 하면서, 자칫 감정의 과잉으로 빠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불식시키는 기능을 하는데요, 그의 슬픔은 ‘비눗방울=물의 집=물집’등의 이미지로 억제되었다가 마지막 행‘뒤축에서 아린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에 와서 극대화됩니다.

일찍 이승을 떠난 언니에 대한 그리움과 서둘러 부부의 인연을 정리한 형부에 대한 원망이 절제의 미학으로 직조되어 있는 이 시는 재산 문제로 서로 다투는 이 시대의 형제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