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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 꽃눈이 번져..
오피니언

[시 한줄의 노트] 꽃눈이 번져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3/05 11:28 수정 2013.03.05 11:28



꽃눈이 번져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누군가 이 시간, 눈 빠알갛게

나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만 나를 흔들어 깨운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눈 부비고 일어나 차분히 옷 챙겨입고

나도 잠깐, 어제의 그대에게 멀리 다니러 간다는 생각이 든다

다녀올 동안의 설렘으로 잠 못 이루고

소식을 가져올 나를 위해       

돌을 괸 채

뭉툭한 내가 나를 한없이 기다려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순간, 비 쏟아지는 소리

깜박 잠이 들 때면

밤은 더 어둡고 깊어져

당신이 그제야

무른 나를 순순히 놓아줬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도 지극한 잠 속에 고여 자박자박 숨어든다는 생각이 든다

그대에게 다니러 간 내가

사뭇 간소하게 한 소식을 들고 와

눈 씻고 가만히 몸을 누이는

이 어두워       

환한 밤에는


고영민 시인
충남 서산 출생.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중앙대학교 문창과 졸업. 시집-『악어』(실천문학사, 2005),『공손한 손』(창작과비평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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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생각이 든다’라는 말에 가만히 마음을 기대어보게 되는 시입니다.

‘나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자꾸만 나를 흔들어 깨운다는’, ‘나도 그대에게 멀리 다니러 간다는’, ‘나를 한없이 기다려준다는’, ‘당신이 무른 나를 순순히 놓아줬다는’, ‘당신도 지극한 잠 속에 고여 자박자박 숨어든다는’ 생각, 생각, 생각들.

생각에 드는 것은 내가 당신에게 간다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당신도 그 생각에 들어서 생각이 생각을 만나는 수도 있겠습니다. 애잔하고 소슬한 느낌. 시에도 체온이 있다면 이 시는 서늘하면서도 쓸쓸한 어느 밤의 창밖만 같습니다.

‘내가 나를 한없이 기다려준다는 생각’, 그렇게 먼 훗날 내가 나를 만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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