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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역리칼럼] 대통령과 인사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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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리칼럼] 대통령과 인사불성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3/05 11:36 수정 2013.03.05 01:13



↑↑ 손병호
남강 역리연구원장
70년대 초반, 시골 풍경 스케치 하나. 날씨가 풀리는 삼월 초, 장터 입구 양지바른 쪽에 <사주, 팔자>라는 글이 쓰인 장대 깃발 아래 돋보기안경을 쓴 영감님이 자리를 깔고 앉아 있곤 했다.

영감님 앞에는 알록달록 그림이 있는 당사주책이나 손때 묻은 토정비결 책이 펼쳐져 있고 대개 막걸리 몇 잔의 부담 없는 복채인지라 바쁘지 않은 행인들이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끄덕여 가며 인생철학 강의를 들었다.

상담역은 눈을 반쯤 감고 연신 입에 침을 발라가며 진지한 표정으로 젊은 아낙을 상대해 신고(辛苦)한 사주를 분석하는데, 공방살이 끼인 탓에 신랑은 계속 외도를 하게 된다는 부분에서는 끝내 아낙의 고운 눈에 눈물이 핑 돈다.

같이 온 중년의 아짐씨도 광목 머릿수건으로 제 설움에 겨워 연신 눈물을 찍어내고, 머슴살이 수 삼 년에 이골이 난 것 같은 젊은 농군의 차례를 기다리는 표정 또한 자못 심각하여 이른 봄날의 정서가 애잔했다.

인생도처 유청산(人生到處 有靑山)이라고 어려움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이렇게 막다른 인생 골목길에 내몰린 그들에게도 반갑고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 있었으니 ‘머지않아 귀인을 만난다’는 달콤한 말이었다.

지치고 외로운 인생살이에서 귀인이라 함은 돈이 있는 후원자나 멋진 배필감, 좋은 동업자 등 주로 행운과 관련된 직접적 해석이다. 그러나 나는 귀인을 다르게 풀이한다. 귀인이란 다름 아닌 ‘나의 재주와 기량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다.

춘추시대 진나라 목공 때, 손양이라는 사람은 말에 관해 달인이라 ‘백락’이라 불렸다. 어느 날 손양은 천리마 한 필이 다른 말들과 함께 소금수레를 끌고 고갯길을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말은 손양과 눈이 마주치자 멍에를 맨 채 땅에 무릎을 꿇고 손양을 쳐다보며 ‘히히힝’ 소리쳐 울었다. 손양 또한 자신의 수레에서 내려 “너에게 소금수레를 끌게 하다니” 하며 말의 목을 잡고 함께 울었다.

한유는 그의 저서 <잡설>에서 소금수레의 원한(염거지감, 鹽車之憾)이라는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소개하며 ‘세상에 백락이 있은 뒤에라야 천리마가 있는 법이다.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은 항상 있지 못하다’고 주를 달았다.

그렇다. 세상에 인재는 늘 있지만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귀인은 흔치 않다. 한신 같은 재주도 장양과 소하만이 알았고 범증 같은 모사도 항우 밑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공직 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특히 고위관료들의 경우 자신들의 승진과 거취에 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새 정부의 실력자들에게 연줄을 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꼴불견이다.

매 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최고 권력자들은 인사 청탁은 누구를 막론하고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막상 불이익을 당했다는 말은 여태 들은 적이 없다.

청렴하고 실력 있는 공직자가 승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임에도 세상은 늘 그 반대다. 난세일수록 지혜로운 스텝을 알아보는 백락 같은 감각이 대통령에게 요구되고 있다.

목하 새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에 관한 우려의 수위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혹시 술에 고주망태로 취했다는 ‘인사불성’의 새로운 버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통령이 권력에 취해 자신만의 인사스타일을 고집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세간의 해석이 있다. 인사불성 대통령이 되지 않으려면 소금수레를 끄는 적토마의 울음소리가 귀에 들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정소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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