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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이운용교수의 인도 비즈니스
인도역사와 유적을 대화의 소재로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3/12 11:57 수정 2013.03.12 11:57
⑥ 인도 역사와 정치 -1




↑↑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가는 타즈마할
인도인들은 대화하기를 매우 좋아한다. 리셉션에 초대 받아 가면 시시콜콜한 집안 이야기부터 국제경제, 문학 등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우리는 영어실력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대화의 소재가 빈곤하여 주로 인도인의 말을 듣기만 한다.

많은 인도인들을 만나면서 참 머리가 좋고 기억력이 비상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인도인들이 자기 역사에 대해서는 많이 모른다는 것이었다.

인도역사에 대해서 화제를 끌어가면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인도인들이 나의 말을 경청하게 된다. 분위기를 압도할 수도 있고 인도인들과 더욱 친해질 수도 있다.

당연히 영국지배를 받은 부분보다는 인도 역사의 좋은 점을 칭찬하는 것이 좋다. 특히 유명한 관광지의 역사적 배경을 함께 설명해주면 대화가 잘된다.

인도인은 토론이나 대화 시 자신의 지적 능력을 은근히 자랑하는 습성이 있다. 특히 상층 브라만 계층은 지금도 베다 경전을 아침 저녁으로 외우는 것이 생활의 하나이므로 기억력이 뛰어나서 암기한 지식을 과시한다. 분위기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도 있다.

이런 때를 대비하여 인도 역사와 유적지의 관계 등을 사전에 공부해 가서 사용하면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런 것은 비즈니스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셉션에 가기 전에 간단히 읽어보고 갈수 있도록 인도 역사를 요약해 보았다. 또한 역사와 당시의 관련된 유적지를 함께 소개하였으므로 여행을 다닐 때 그 유적지가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인도

인도는 기원 전 50만년 전부터 인간의 활동이 시작되었다는 흔적이 남아있다. 기원전 6천년 경부터는 가축사육, 농경, 정착생활을 한 흔적이 신드, 발루치스탄 지역을 중심으로 남아있다. 이들 지역은 현재 인도서부 및 파키스탄 내에 있다.

기원 전 3천년부터는 글자, 도시유적 등이 펀잡, 신드 유역의 인더스강 일대에서 발견된다. 이 것을 인더스 문명이라고 칭하는데 그 중심이 도시문화로 알려진 모헨조다로, 하라빠 유적이다.(기원전 2500~ 1600).

이 시기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현재의 이라크)와 교역을 하고, 청동무기, 염색기술 등이 나타났다. 하라빠 글자모양은 드라비다어 또는 산스크리트 원형이라는 논쟁이 있다.


↑↑ 인더스 문명인 하라파, 모헨조다로 유적지 (현재는 인도가 아닌 파키스탄지역에 있음)
아리안의 동진(東進)

인더스 문명은 철기의 베다 문명에 의해 몰락한다.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는(논쟁 있음, 필자 주) 아리안족이 베다 문명의 주인이다.

아리안이란 용어는 순수, 우월 등의 의미를 가지며, 원주민에 대하여 자기 종족의 동질성을 보유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들이 만든 4개의 베다는 이후 힌두 전통생활의 기본이 되었고 현재도 인도인의 생활윤리로 자리잡고 있다. 카스트의 4계급도 이때부터 형성되었다고 본다.

기원 전 2000년 경부터 시작된 베다 문명은 현재의 파키스탄에서 동쪽으로 전진하여 인도 서북부 펀잡 일대까지 지배하였다.

아리안족은 계속 동진하여 기원 전 1500 ~800년에 갠지스강, 야무나강 일대를 모두 차지하여 파키스탄에서 인도 갠지스평원까지 그 세력을 펼치며 기원 전 6세기에 이르러서는 마가다, 코살라, 쿠루, 간다라등 무려 16개의 군소왕국들이 활거하게 된다. 이들 나라중의 하나인 샤카족 왕실에서 기원전 560년에 석가모니가 탄생하였다.

이 기간 중에 인도의 유명한 2대 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가 저술되었다. 마하바라타는 기원전 600년경에 지어졌다고 하며, 라마야나는 발미키가 기원전 5~3세기에 저술하였다고 추측된다. 책 내용에 아요디아 왕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북인도 힌두성지, 불교성지 일대가 무대로 보인다.

기원전 6세기 말 인도 북서지방은 페르시아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기원전 326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인더스유역을 침공하였다.


마우리아 왕국

인도의 최초 중앙집권국가로 알려진 마우리아 왕국은 기원전 326년~184년 사이에 존속하였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야가 세운 이 나라는 현재의 비하르 주의 빠트나에 수도를 두었다.

마우리아 왕국은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로서 펀잡과 신드지역을 점령하고 서쪽으로는 인더스유역의 그리스 세력을 몰아냈으며 동쪽으로는 콜카타 지역, 남쪽으로는 현재의 안드라쁘라데시 지역까지 지배하였다.

마우리아 왕국은 정교한 관료체제로 넓은 지역을 통치하였으며 상업이 융성하였고 그리스의 외교사절이 방문하기도 하는 등 명실 상부한 북인도의 패자로 군림하였다.

찬드라굽타의 손자인 아쇼카 대왕은 인도 역사상 위대한 정복군주로서 북쪽으로는 카시미르, 네팔, 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남쪽으로는 타밀을 제외한 데칸고원 대부분의 지역을 복속시켰다.

그는 동쪽으로 오릿사 지역의 칼링가 전투에서의 대규모 학살 이후 전쟁의 비참함에 회의를 느껴 불교에 귀의한다. 기원전 269~232 기간 동안 재임하면서 통치지역에 stone pilla를 세우고 시리아, 마케도니아 등에 외교사절을 파견하는 등 국력을 확대하였다. 그는 불교를 장려하여 불교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마우리아 왕국의 번성은 이후 기원 후 1700년 경까지 인도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 정도가 되는 기틀을 구축했다고 평가된다.


쿠샨 왕조

기원 전 1세기에서 기원 후 3세기 동안 유지된 쿠샨 왕조는 페르샤, 중국, 로마등과 교역을 하고 실크로드의 주요부를 지배하였다. 기원 후 78년부터 약 20년간 통치한 카니시카 왕은 간다라미술(그리스 인도 미술 혼합), 산스크리트 문학을 발전시키고 불교를 적극 지원하였다.

쿠샨왕조 기간 중 남인도의 데칸고원에 성립한 사타바하나 왕국(일명 안드라 왕국)은 분권화 상태이기는 하지만 마우리아 왕조의 통치 모델을 사용하였다. 불교가 융성한 쿠샨왕조가 끝나고 굽타왕조에 들어서면서 힌두가 득세하게 된다.
 
남인도 왕국들

데칸고원 남쪽에는 현재의 께랄라 지역에 쎄라 왕조(또는 체라), 현재의 타밀나두 지역에 쏠라 왕조, 현재의 타밀 남부지역에 빤디아 왕조가 있었다. 로마, 동남아시아와 해상을 통한 교역이 활발하였다. 남인도에는 로마의 주화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북인도에서는 기원 후 320~550에 굽타 왕조가 들어섰고 이어서 하르샤 왕조가 짧은 기간(606~647)이지만 북인도를 지배하였다. 같은 시기의 남인도는 차루키아 왕국(556~757), 빨라바 왕국(300~888), 빤디야 왕국(7세기~10세기)이 부침하였다. 몇 백년에 걸쳐 이루어진 아잔타, 엘로라 석굴, 안드라쁘라데시의 아마라바티 등이 이 기간 중의 유적들이다.


이슬람세력의 인도 진출

711년에 이슬람 세력이 인더스 유역의 신드지방을 점령하여 인도-무슬림 국가를 세웠다. 10세기 말엽에는 터어키가 아프간, 이란, 인도를 차례로 점령해 들어왔다.

가즈니(971~1030)왕은 997년부터 1027년까지 17번이나 북인도를 공략하여 펀잡을 자기 영토로 만들었다. 이 기간 중 인도는 비하르 일대의 팔라 왕국, 쁘라티하르 왕국, 찬들라 왕국 등 여러 소국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서북부에서 밀려오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서서히 몰락해가는 처지였다. 남녀 성교모습의 에로틱한 조각으로 사원 벽을 장식한 카주라호는 찬들라 왕국시대에 만들어진 유적이다.

13세기 들어 Shams-ud-Din Iletmish (1211~36)는 델리에 터어키 왕국(델리 술탄왕국)을 세웠다. 델리 술탄 왕국은 맘룩(노예) 왕조(1206~90), 칼지 왕조(1290 ~1320), 투글락 왕조(1320~1413), 사이드 왕조(1414~51), 로디 왕조(1451~1526)등 5개 왕조가 부침하였다.

알라우딘의 재임기간(1296~1315)에는 남인도 대부분을 통치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주요 유적지는 꾸탑미나르가 있다. 72.5m 높이의 탑으로 노예신분으로서 왕이 되었던 꾸툽우딘아이박 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이곳에는 찬들라버만 왕이 설치한 쇠로 만든 기둥이 있는데 1500년이 넘었는데도 녹이 슬지 않는다. 델리 술탄 왕조 기간 중 남인도에 나타난 국가는 무슬림의 바마니 술탄 왕국(1347~1527)과 힌두의 비자야나가르 왕국 (1336~1565)이 있다.

1504년 자히르우딘 바부르가 카불을 점령한 후 델리의 로디 왕조를 무너뜨리고 최초의 무갈제국 황제가 되었다(1526 ~1530). 이어서 후마윤 왕(1530~56), 악바르 왕(1556~1605). 자한기르 왕 (1605~27), 샤자한 왕(1628~58), 오랑젭 왕(1658~ 1707)으로 이어졌다. 델리에서는 무갈제국의 왕궁이었던 레드포트(힌디로 랄낄라)가 볼 만하다.

↑↑ 무갈제국의 왕성인 레드 포트(힌디로는 ‘랄 낄라’)로 들어가는 입구


↑↑ 이운용

한국외대 인도어과
한국외대 지역대학원 정치학 석사
인도 첸나이무역관 관장
한국인도학회 부회장(현)
영산대 인도연구소장(현)
영산대 인도비즈니스학과 교수(현)
영산대 기획처장(현)
델리에서 남동쪽으로 170km 떨어진 아그라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타즈마할이 있다. 샤자한 왕이 왕비 뭄타즈의 죽음을 애도하여 1630년부터 1648년까지 지은 무덤이다. 무갈 제국은 마라타족의 저항운동(1627~80), 펀잡 지역의 시크들의 반발로 국력이 쇠퇴하던 중 유럽세력이 들어오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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