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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수 양산남부고등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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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5년을 되돌아보고 평가하자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나로서는 ‘말의 타락’ 현상에 주목하고 싶다.
‘한반도 대운하’가 느닷없이 ‘4대강 살리기’로 둔갑한 것을 비롯하여 별별 해괴한 말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측근들이 비리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는 과정에서 나온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정부’가 아닌가 싶다.
말이 본래 값을 못하고 엉뚱하게 쓰이면서 많은 국민들을 허탈하게 했다. 새로이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대선 공약과 관련해 말 바꾸기 논란이 빚어졌는데, 이명박 정부를 거울삼아 초기의 혼란을 잘 극복하고 말과 관련한 논란이 없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도 ‘말의 타락’과 관련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 싶다.
학교에서는 해마다 여러 가지 계획서, 보고서를 작성한다. 계획서에는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교육 목표가 설정되고 그 목표를 실현할 다양한 방법론이 제시된다.
그래서 이런저런 계획들이 교육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또 보고서에는 앞서 계획한 목표에 얼마나 잘 도달했는지, 목표를 실현하는 데 동원된 방법이 목표 달성에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교육적 성과를 자랑한다. 특히 연구시범학교나 각종 재정을 지원받은 사업의 보고서는 모두 성공 사례만을 늘어놓고 있다.
만약 그 계획서, 보고서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학교는 벌써 천국이 되어 있고 학생과 교사는 행복에 겨워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작성된, 엄청난 교육적 성과를 자랑하는 수많은 문서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학교는 천국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렇다면 저 많은 계획서, 보고서에 담긴 말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현실 속에서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하는, 영양가 없는 거짓부렁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헛된 말, 무의미한 말을 잔뜩 늘어놓으며 사는 우리는 과연 ‘말의 타락’과 관련한 비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만약 학생들이 이런 서류들을 본다면 학교나 교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적어도 우리가 학생들을 올바로 가르치고자 한다면 ‘말’이 가진 값과 무게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학교 현장에서 우선 할 일은 말의 값을 제대로 찾아주기 위해 허위(虛僞)의 언어, 가식(假飾)의 언어를 걷어내고, 우리가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일 것이다. 또한 학교 현장의 목소리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아울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웃집에서 왜 돼지를 잡냐는 아들의 물음에 ‘너를 먹이려고 그런다’고 무심코 대답했다가 어린 아이를 속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돼지고기를 사다 먹인 맹자(孟子) 어머니의 고사(故事)가 아름다운 옛 이야기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