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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 프로의 힘..
사회

<시 한줄의 노트> 프로의 힘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3/19 14:44 수정 2013.03.19 02:44




저 사내는 프로다


배고파도 목말라도 발 저려도 종일 그 자세로

한 번도 졸지 않고 싸늘한 바닥에 앉아

악취를 참고 배뇨를 참고 가려움을 참고 추위를 참고 소음을 참고

매캐한 먼지를 참고 치미는 화를 참고

지하계단에 무릎 꿇고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저 늙은 사내,

이십 년 한 자리에 눌러앉은 그 게으름이

사내를 먹여 살린다



지하도 입구

삼년 경력 절름발이 사내

졸다가 자다가, 누웠다가 앉았다가 늘 근무태만

돌아앉아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지나가는 여자에게 쌍욕도 하고,

오줌 누러 가고 밥 먹으러 가고 비 온다고 눈 온다고

아프다고, 생업을 작파하고 수시로 자리를 뜨는 그 부지런함에

늘 배가 고프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걸인(乞人)이 되려면 이 모든 것을 통과해야한다


마경덕 시인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신발論』.
현재 시마을문예대학, 한국시문화회관 부설 문예창작학교 강사, MBC롯데, AK문화아카데미 시 창작 강사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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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이 시는 도시빈민이라는 특정한 계층의 가난한 일상을 꼼꼼한 시선으로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대개의 시에 드러나는 ‘가난’은 궁핍한 현실이 인간을 얼마나 처참하고 비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많은데, 이 시의 가난은 궁핍보다는 이런 비극적인 현실을 극복하는 정신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 <배고파도 목말라도 발 저려도 종일 그 자세로/ 한 번도 졸지 않고 싸늘한 바닥에 앉아> 이십년을 <참고> 살아온 <늙은 사내>의 모습은 가난과 씨름하는 빈민의 삶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졸다가 자다가, 누웠다가 앉았다가 늘 근무태만>인 <삼년 경력 절름발이 사내>와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주제를 새로운 미학의 차원으로 이끌고 가는 이 시는 우리에게 프로가 되는 과정이 어떤 인간적 고통을 수반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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