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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오피니언

<시 한줄의 노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4/09 11:05 수정 2013.04.09 11:05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이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시인
1912년 평북 정주 출생. 본명은 기행(夔行).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사슴’(1936), ‘여우 난 곬족’(조광, 1935. 12), ‘고야 古夜’(조광, 1936. 1), ‘백석 시전집’(1987), ‘흰 바람벽이 있어’(1989)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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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한국현대문학 100년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김진향(김영한)이란 기생과의 로맨스로도 유명한 시인이지요.
이 시는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그려내는 소묘의 밀도가 굉장히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눈이 푹푹 날리는 공간에서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시’는 시인의 모습은 외롭고 높고 쓸쓸한 풍경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 ‘나타샤’와 산골로 가기를 꿈꾸는 화자의 독백에는 사랑을 향한 뜨거운 입김으로 가득한데요, 특히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는 표현은 정말 놀랍군요.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밤 눈이 내린다니요, 그녀와의 사랑 앞에서는 우주의 질서조차 소도구일 뿐이었나 봅니다. 홀로 만주의 춥고 쓸쓸한 방에 남아 고향과 그녀를 그리워했을 것을 생각하니 제 마음도 아릿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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