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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지만 맨얼굴처럼 드러나는 아이들의 현실을 발견할 때면 ‘희망’을 말하기가 두렵습니다.
우리 반으로 전학 온 진이는 자그마하고 말랐으며 까무잡잡하여 보기에도 춥게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진이의 작은 아버지 걱정과는 달리 첫날부터 아이들과 잘 어울려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작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이런저런 가정 사정으로 지금은 할머니와 둘이서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 78세인 진이 할머니께서는 가정통신문이 나가면 이웃에 부탁하거나 담임인 나에게 전화를 하십니다.
“선생님요, 뭔 말인지 내사 통 모르겠으니 알아서 해 주이소. 집으로 보내도 나는 모른다. 우리 진이 잘 부탁합니더. 잘 좀 돌봐 주이소”
아무 탈 없이 학교를 잘 다니던 진이가 감기로 며칠 결석을 해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님요, 내가 속이 상해서⋯”
“할머니, 뭔 일 있어예?”
“그게 아이라, 지 딴에 밤에 열이 나고 아프니께 아빠보고 싶다고 난리도 아인기라”
“할머니 속상했겠어예”
“그러더니 내 손을 꼭 잡고 할머니 내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올 때까지 죽지 말고 나랑 같이 살자 안하는교”
먹먹해지는 마음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3월 말, 진이 할머니께서 학교로 전화하셨습니다.
“선생님요, 학원에서 놀이동산으로 놀러 간다길래 가지고 가라고 돈을 가방에 넣어 주면 꺼내 놓고 넣어 주면 꺼내 놓고 오늘 또 꺼내 놓고 갔다 아이가. 안 가도 된다고 하면서”
“할머니예, 제가 진이에게 물어 볼게요. 너무 걱정 하지 마세요”
저는 짐작되는 바가 있어 진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가만히 있던 진이는 2만9천원이 할머니에게 얼마나 큰돈인지 알기 때문에 안가는 거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폐지를 줍거나 미나리나 쑥을 캐서 마련한 돈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 놀이동산에 누구보다 가고 싶었을 아이, 철이 너무 일찍 든 아홉 살 진이 등을 토닥이며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할머니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도 못하고 화장실에서 숨 죽여 우는 여덟 살 아이, 자신들을 방임하는 부모 대신 밥을 하고 동생을 챙겨 학교에 다니는 열한 살 아이, 흩어진 가족들이 보고 싶다며 속상해 하는 아이들.
‘선택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를 두고 어른들이 다투는 사이에 오늘도 진이는 자기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