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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 메디치 가문에서 배우는 창조경제..
오피니언

[화요살롱] 메디치 가문에서 배우는 창조경제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5/07 11:27 수정 2013.05.07 11:27



↑↑ 허광욱
영산대학교 국제무역학과 교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말이 ‘창조경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창조경제는 산업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원래 ‘창조경제’란 말은 2001년 존 호킨스(John Howkins)의 저서 ‘The Creative Economy’(창조경제, 펭귄출판사)에서 유래했는데, 그는 창조경제를 “새로운 아이디어, 즉 창의력으로 제조업ㆍ서비스업ㆍ유통업ㆍ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그는 “창조경제의 원재료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졌으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경제자본이나 상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재능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창조경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창조경제’란 화두를 접하면서 필자는 중세 유럽의 메디치 가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메디치 가문이 역사에 이름을 드러낸 시기는 15~16세기였다. 이때는 중세문화와 봉건적 사회구조가 근대문화와 자본주의로 전환되는 시기였으며, 유럽의 정치권력이 이탈리아의 큰 독립국가들(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로부터 프랑스, 영국, 독일 같은 북부 국가들로 옮겨가는 시기였다. 당시의 변화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지리상의 대발견, 과학혁명 등으로 구체화됐다.

메디치 가문은 1400년대부터 1748년까지 약 350년간을 지속하면서 피렌체시민과 함께 피렌체의 르네상스 운동을 주도했다. 가문이 시작될 때에는 이탈리아 중부지방 피렌체 공화국의 평범한 중산층이었지만, 은행업과 모직산업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하면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문이 됐다. 16세기에는 교황을 2명이나 배출했고 2명의 프랑스 왕실의 왕비를 배출했다. 또한 피렌체 공화국의 실제적인 통치자였으며 학문과 예술을 후원해 르네상스 시대가 피렌체에서 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문이 몰락할 때에는 가문의 모든 재산과 예술품을 전부 피렌체 시민들에게 기증해 영원히 피렌체 시민들과 함께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메디치 가문은 1400년대의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Giovanni di Bicci de’Medici, 1360~1429)부터 시작됐다. 그는 14세기 말에 모직산업과 유럽의 중요한 16개 도시에 은행을 보유했고 교황의 은행가로서의 은행업무 외에도 향신료, 비단, 모직, 후추, 설탕, 모피, 염료, 명반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품을 취급해 부유한 상인이 됐다. 그가 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 계기는 다른 귀족들이 반대한 피렌체 정부의 조세개혁에 순응하며 앞장서서 세금을 납부한 일이다. 조반디 디 비치 데 메디치의 사후에는 그의 아들인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il Veccio; 1389~1464)가, 그리고 코시모의 손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il Megnifico; 1449~1492) 등이 메디치 가문을 유럽의 명문가문의 반열에 올려놨다.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은 항상 시민들을 보호하고 피렌체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으며, 자신들의 엄청난 사재(私財)를 투자하여 학문을 부흥시키고 예술을 장려하는 활동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코시모 데 메디치는 피렌체의 국부(國父)란 칭호를 받았고 로렌초 데 메디치는 ‘위대한 자’란 칭송을 받았다. 또한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은 ‘플라톤 아카데미’를 설립해 중세 카톨릭교회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동방 비잔틴교회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고 있던 플라톤 철학의 융합을 시도했다. 메디치 가문은 예술활동도 적극 후원했는데, 회화 분야에서는 프라 안젤리코, 리피, 고촐리, 길란다요, 보티첼리, 로렌초 디 크레디, 라파엘로 등이 후원받았으며 조각분야에서는 기베르티, 도나텔로, 베로키오, 미켈란젤로, 건축분야에서는 브루넬레스키, 미켈로초, 브라만테 등이 후원을 받았다. 그 결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성기 르네상스의 찬란한 예술적 걸작물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와 종교를 연구하는 연세대 김상근 교수는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등 자신의 저서에서 메디치 가문이 동ㆍ서방 사상의 융합을 앞장서서 이끌었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가 가능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메디치 가문처럼 이질적인 생각의 융ㆍ복합을 통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 글로벌 시대의 경영분야에 접목하려는 시도도 있는 바가 있다. 프란스 요한스(Frans Johansson)는 이것을 ‘메디치 효과’라고 명명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 대기업 혹은 부자들이 여러 가지 비합리적이고 몰지각한 행태로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들도 메디치 가문처럼 자신의 부를 잘 활용하여 일반시민들의 마음을 얻고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며 진정성을 가지고 학문을 장려하고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일에 매진해 대한민국의 창조경제를 구축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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