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졌다 하더라도 스승에 대한 존경심마저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최근 학교폭력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가정과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새삼 절실한 때다. 하지만 인성교육은 말 그대로 부모나 스승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존경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6.25 동란에서 아버지가 전사하는 바람에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누나와 여동생 가운데 혼자 남아였지만 어릴 때는 제대로 사내 구실을 하지 못하고 응석만 부렸던 것 같다. 우리 집은 석계 반회마을에 있었는데 2km 정도 떨어진 상삼마을에 서 마지기의 논이 있었다. 가을에 거두어들인 볏단을 어머니께서는 혼자 머리에 이고 집으로 나르곤 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상북초등학교에는 김동근 선생님이 교장으로 재직하고 계셨는데, 우리 집 바로 옆에 친구분 집이 있어 자주 왕래하시느라 우리 집 사정을 웬만큼 아셨던 것 같다. 전쟁통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혼자 고생하시는 것이 안타까우셨는지 교장 선생님은 4, 5, 6학년 학생을 모두 동원해서 우리 집 볏단을 상삼 들판에서 집까지 옮기도록 해주셨다.
어머니는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당시 아이들이 좋아하는 군용 건빵을 사서 전하려고 하였으나 이 말을 들은 교장 선생님은 극구 만류하시며, 큰 독에 시원한 물이나 가득 준비해 놓으라고 하셨다. 그날 볏단을 나르느라 땀을 흘린 아이들은 우물가에서 찬 물로 목을 축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머니께서는 이날 일을 두고두고 내게 말씀하셨다.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도 고마운데 조그만 댓가도 사양하시며 찬물 한 그릇으로 남을 배려해 주신 선생님의 넓은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나도 크면 꼭 은혜를 갚으리라 다짐했는데 어쩌다 세월이 지나고 선생님은 작고하시고 말았다.
하지만 그분의 훌륭한 가르침이 내게 알게 모르게 전달되었는지 나는 아비 없는 자식으로 빗나가지 않고 공무원이 되어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나를 내세우지 않고’, ‘남을 배려’ 하는 가르침을 따라 안분자족(安分自足) 하면서 인생의 역정을 지나올 수 있었다.
존경하는 고 김동근 교장 선생님!
스승의 날을 맞아 다시한번 머리숙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