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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화요살롱] 립스틱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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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살롱] 립스틱 효과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5/21 10:21 수정 2013.05.21 10:21



 
↑↑ 신원용
영산대학교 아세안비즈니스학과 교수
 
유럽 17개국은 사상 최장기 경기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고, 세계는 불황의 여파로 신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도 글로벌 경제 침체에 엔저의 공습, 북한 핵위협으로 부동산, 주식, 외환시장도 추락을 거듭하고 있고, 내수부진이 이어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들이대는 각종 경제지표마저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킨다. 여러 경제연구기관도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2% 이하로 낮추면서, 성장률이 3%만 돼도 대성공이라고 한다. 더욱이 내년에도 빠른 경기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한국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의 초기단계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기 침체기 속에서도 여성의 화장과 옷차림만은 예년보다 훨씬 화사해진 느낌이다. 손바닥만 한 길이의 아찔한 핫팬츠가 뜨고 있고, 색상도 형광색 계통으로 눈에 확 띈다. 경기 불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늘 나오는 말이 있다.

불황기일수록 스커트는 짧고 화려해지며 짙은 립스틱 바르기를 선호한다는 속설이다. 그럴까? 화장품 업계에서는 종종 립스틱 판매로 경기를 예측한다. 경기가 불투명할 때는 소비 위축으로 전반적인 화장품 매출이 감소하지만, 립스틱 매출만은 유일하게 경기 변동과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립스틱은 다른 화장품 아이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가이지만, 그 하나만으로도 분위기를 확 바꾸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처럼 불황기에 저렴하지만 만족도를 높여줄 수 있는 소위 불황상품의 매출이 증가하는 현상을 ‘립스틱 효과’라고 한다.

미국 내 고급 화장품 시장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사는 자사의 화장품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립스틱과 경기가 상당히 높은 연관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회사는 립스틱 판매량과 경기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립스틱 지수’를 만들었는데, 이 지수가 중요한 경제지표 중 하나로 사용될 정도이다.

실제로 2001년 9.11테러 직후 찾아온 불황기에 립스틱 지수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경기 불황으로 립스틱 효과에 따른 소비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G마켓과 인터파크의 조사 결과 올해 1~2월 립스틱, 립글로스 판매량이 전년 대비 53% 늘어났는데 특히 핫핑크 립스틱이 큰 인기를 몰았으며, 네일아트용품과 액세서리 용품은 각각 46%, 94% 증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립스틱 판매량으로 주가를 예측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경기가 나빠져서 립스틱 판매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립스틱 판매가 경기의 선행지수가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학자들은 쉽게 동의하지 못할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소비자들이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게 느끼고 있다는 의미이니, 향후에도 소비가 계속 위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법 합리적인 예측이기도 하다.

불황기에 립스틱이 꾸준한 매출 상승세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십만원짜리 옷은 차마 살 수 없지만, 1~2만원대 립스틱은 가능하다. 다른 소비를 못하게 될수록 허용 가능한 사치품 하나를 얻는 기쁨은 그만큼 커진다.

그뿐만 아니라 립스틱은 다른 화장품보다도 분위기를 바꿔주고 가장 눈에 띄는 효과가 있다. 그야말로 저비용 고효용인 셈이다. 무엇보다 큰 건 ‘심리적인 이유’라고 한다. 싼 값으로 가장 뛰어난 기분 전환 효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빨간색을 보기만 해도 신진대사가 13.4% 좋아지고, 빨간 불빛을 보여주고 악력을 재면 20% 세진다는 보고도 있다. 불황에 미니스커트와 붉은 립스틱이 뜨는 데 대해 여성미를 최대한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어찌 생각하면 불황기 즉, 어려운 상황일수록 상대적 약자인 여자들이 심리적 불안함을 많이 느끼며 안정적 상황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들의 여성성을 부각함으로써 남자를 유혹하거나 혹은 남성으로부터의 보호를 받으려는 일종의 잠재된 본능이 자극되어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속설이지만 실질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로 우울해진 사람들이 화사한 화장과 옷차림으로라도 기분을 달래고자 했기 때문일까.
불황기에 역설적으로 매출이 오르는 것은 립스틱뿐만 아니다. PC방, 게임업체와 복합 찜질방의 수익도 불경기에 더 늘어난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다른 산업의 수익이 줄어드는 것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잉여시간을 저렴하게 보내는 방법이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가족이 온종일 찜질방에서 뒹굴 수 있는 저렴한 레저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초콜릿도 지난해 동기간에 비해 매출이 약 24%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넥타이, 브래지어 판매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넥타이가 잘 팔리는 이유는 정장을 입기보다는 값싼 넥타이로 여러 벌의 효과를 낼 수 있어서다. 브래지어도 마찬가지 이유다. 팍팍한 현실로 부터의 도피 현상이지만, 이러한 것도 립스틱 효과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긍정적인(?) 해석은 립스틱은 여성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줌으로써 립스틱 짙게 바르고서라도 가혹한 현실에 맞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여성들이 화장으로 헛헛한 마음을 달래는 ‘립스틱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경제가 여성들의 입술을 더욱 빨갛게 만들까 걱정된다.

그러나 불황일수록 그동안 삶을 반성하고 삶의 질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 불황과 절망의 에너지가 넘치는 시대에서 우리 개인과 사회공동체는 불황으로 어려운 현실에 시선을 묶지 말고, 훨씬 피폐한 삶을 영위해 왔고, 불황으로 더더욱 한계상황에 처한 우리 사회와 제3세계의 약자들의 존재를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욕망의 동력으로 달려오면서, 부족했던 배려하고 나누는 공감적이고 겸허한 삶의 양식의 소중함을 되찾아야 할 기회이다.

핫팬츠, 미니스커트와 짙은 화장으로 아름다워진 여성들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경기가 좋아져 일자리를 찾은 졸업생들과 함께 기뻐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핑크빛 립스틱은 아름답지만 ‘립스틱 효과’는 참 우울한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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