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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 한줄의 노트] 패배는 나의 힘..
오피니언

[시 한줄의 노트] 패배는 나의 힘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6/04 10:39 수정 2013.06.04 10:39



어제는 내가 졌다

그러나 언제쯤 굴욕을 버릴 것인가

지고 난 다음 허름해진 어깨 위로

바람이 불고, 더 깊은 곳

언어가 닿지 않는 심연을 보았다

오늘도 나는 졌다

패배에 속옷까지 젖었다

적은 내게 모두를 대가로 요구했지만

나는 아직 그걸 못하고 있다

사실은 이게 더 큰 굴욕이다

이기는 게 희망이나 선이라고

누가 뿌리 깊게 유혹하였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시 싸움을 맞는 일

이게 승리나 패배보다 먼저 아닌가

거기서 끝까지 싸워야

눈빛이 텅 빈 침묵이 되어야

어떤 싸움도 치를 수 있는 것

끝내 패배한 자여,

패배가 웃음이다

그치지 않고 부는 바람이다

황규관 시인
1968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철산동 우체국’(내일을여는책, 1998)과 ‘물은 제 길을 간다’(갈무리, 2000), ‘패배는 나의 힘’(창비, 200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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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살아가면서 한 번도 좌절감을 맛보지 않은 사람, 고통과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삶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시는 ‘패배’가 힘이 된다는, 곧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란 사실을 환기하고 있군요. 그런데 힘이 되는 패배란 어떤 패배일까요? ‘지고 난 다음 허름해진 어깨 위로 바람이 불고, 더 깊은 곳 언어가 닿지 않는 심연을 보았다’면 일단 ‘패배가 웃음’이라 수긍하겠는데, 여전히 아리송합니다. 시인은 삶에 패배한 그 순간이 바로 노래가 터져 나오는 때라며, 그 노래는 나를 압박해오는 혹독한 삶의 무게를 내 것으로 한 다음에야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사는 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아프고 아파서 아픔이 웃을 때까지 천천히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승리보다 패배가 많은 삶, 경쟁은 어디나 있고, 누구나 이기기를 바라지만 대부분 지고 맙니다. 그러나 패배에 굴욕을 느낄 것까지는 없습니다. 패배를 웃음으로 완성하는 길, 그것은 또 다른 승리의 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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