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내가 졌다
그러나 언제쯤 굴욕을 버릴 것인가
지고 난 다음 허름해진 어깨 위로
바람이 불고, 더 깊은 곳
언어가 닿지 않는 심연을 보았다
오늘도 나는 졌다
패배에 속옷까지 젖었다
적은 내게 모두를 대가로 요구했지만
나는 아직 그걸 못하고 있다
사실은 이게 더 큰 굴욕이다
이기는 게 희망이나 선이라고
누가 뿌리 깊게 유혹하였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시 싸움을 맞는 일
이게 승리나 패배보다 먼저 아닌가
거기서 끝까지 싸워야
눈빛이 텅 빈 침묵이 되어야
어떤 싸움도 치를 수 있는 것
끝내 패배한 자여,
패배가 웃음이다
그치지 않고 부는 바람이다
황규관 시인
1968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철산동 우체국’(내일을여는책, 1998)과 ‘물은 제 길을 간다’(갈무리, 2000), ‘패배는 나의 힘’(창비, 200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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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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