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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호 남강 역리연구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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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절, 뻔뻔함이란 그저 자신의 잘못에 대한 민망함을 감추기 위한 오버액션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를테면 황소 도둑이 순경에게 들키자 “저는 그저 고삐 하나만 갖고 나왔는데 소도 따라 오더군요”같은 맹랑한 유머가 유행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최근 SNS에 떠도는 윤창중 시리즈는 과거의 애교성 뻔뻔함이 아니라 ‘닥치고 뻔뻔함’이다. 산신령이 “금팬티가 네 팬티냐? 은팬티가 네 팬티냐?”고 묻자 윤 씨는 “저는 제 이름 석 자를 걸고 맹세코 노팬티가 제 팬티입니다요”라고 고백하고 재빨리 금ㆍ은ㆍ동 팬티를 모두 다 받아 챙겼다고 한다. 누군가 웃자고 지어낸 얘기지만 돈 앞에선 체면도 염치도 없어지는 씁쓸한 우리네 자화상이다. 굳이 정치인들, 재벌들, 사회적 명사들만 뻔뻔한 이들일까.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남양유업과 대리점주들의 갈등에서 비롯된 갑을 관계의 ‘갑’ 또한 한꺼풀 벗겨보면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을인 네가 감히 어쩌랴’하는 후안무치, 경제적 이익 앞에서 어떤 부끄러움도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막무가내식 뻔뻔함이 이 사회 곳곳에 번들거리고 있다.
명리학에서는 사주에 화가 과다하면 위인의 성격은 급하지만 말을 애둘러 할 줄 모르고 곧은 말을 잘 한다고 풀이한다. 반대로 사주에 토가 있으면 도량이 넓고 인품이 진중하나 토가 태과하면 고집이 하늘을 찌르고 수치를 모르며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성격으로 판단된다. 개인의 성격은 장단점이 병존하므로 굳이 좋다, 나쁘다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다. 또 성격적 단점은 본인의 수양에 따라 개선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집단이나 사회가 이렇게 무작정 뻔뻔해지면 대책이 없다.
내가 끔찍이 싫어하는 말이 있으니 바로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다. 물질에 대한 집착이 찐득하게 묻어있는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부자가 될 가능성이 낮아만 지는 나의 자격지심인지 모르지만 부자가 되지 않으면, 갑이 되지 않으면 다음엔 상종도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어떤 전제 조건도 없이 무조건 부자가 되라는 인사는 ‘어떤 수단이라도 좋으니 돈만 많이 버세요’식으로 들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자가 되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허나 ‘행복하십시오’라는 인사말에 이미 물질과 정신적 부에 대한 두 가지 기원이 모두 담겨있다. 굳이 ‘부자가 되라’는 노골적인 인사는 정신을 가치체계에서 우선순위를 두어왔던 동양철학, 아니 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경계하던 선조들의 당부에 대한 빈정거림 내지 도발처럼 들려 불쾌하기 짝이 없다. 어느 새 인사조차 드러내 놓고 뻔뻔해지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