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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봉석 양산중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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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승의 날을 마뜩찮게 여기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학부모들의 요란한 선물공세다. 그냥 봐도 꽤나 비싸 보이는 꽃바구니가 연이어 교무실에 배달돼 오고, 과일 상자들도 여럿 보인다. 리본에는 스승의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문구와 보낸 사람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박혀있다. 학부모회에서 보냈다는 떡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쉬는 시간마다 하나씩 집어 먹는다. 어지간하면 좋은 마음으로 받을 수도 있겠지만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학생의 날, 경찰의 날, 노동자의 날이니 하는 그런 날들이 심란한 이유는 기념되는 이상과 현실의 부정합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교직에 대해서 부러움과 질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철밥통 공무원일 뿐만 아니라 1년에 두 번씩 방학이라는 호사를 누리는 신의 직장이니 말이다. 심지어 방학 때 집에서 노는데 왜 월급을 주냐고 성토하는 얘기도 들었다. 그렇게 보였다니 반성할 지점도 찾아야겠지만 참 슬프다.
그래서인지 교사는 또한 동네북이다. 학생들의 성적 부진도, 학교폭력 문제도, 심지어 학생들이 인사 잘 안하는 것도 일선 교사들 책임으로 돌린다. 교사들이 영 못 미더웠던지 과목별로 진도표를 확인하고 학생 상담 일지도 꼬박 꼬박 적게 해서 제출하란다. 쏟아지는 잡무 처리에 허덕이다 학생 상담 잠깐하고 한참을 상담일지 적느라 낑낑거려야 하는 우스꽝스런 모습도 봤다. 교사들을 경쟁시키고 성과를 따져 수당을 달리 주면 더 열심히 근무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교육정책 앞에서 스승으로서의 자존심과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호소한들 무슨 메아리가 있겠는가?
올해 스승의 날, 소란스런 마음을 다잡고 수업을 들어가려는데 우리 반 학생이 카드를 하나 내밀었다. 담임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반에는 수업도 안 들어가고 조ㆍ종례도 가끔씩 들어가는 복수담임이라 나한테까지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가 기특했다. 카드의 내용이 아직도 뭉클하다. 얼마 전 학부모가 교무실까지 와서 소리를 지르고 막말하는 광경을 본 모양이다. 내가 학부모한테 학생을 대신해 머리를 조아려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었단다. 그리고 내 마음을 다 안다고 한다. 우리 반 교실에는 자주 못 오지만 학생들을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그 정성을 다 알고 있다고…. 남자 중학생답지 않게 하트까지 그려가며 정성스럽게 적은 카드를 한참동안 읽고 또 읽었다. 카드 한 장으로 선생을 이렇게 부끄럽게 하다니. 이렇게 학생이 오히려 스승이기도 하구나.
나이 어린 스승에 대한 보답으로 성격을 좀 바꿔야겠다. 스치듯 작은 감사의 목례에도 허리 숙여 답해야겠다. 그리고 낮은 자세로 교사로서 내 모습을 찬찬히 돌아봐야겠다. 바쁘다, 피곤하다 투덜거리던 마음을 내려놓고 교실로 가야겠다.
이 글 갈무리하려는데 졸업한 녀석들 몇 놈이 찾아와서 기어이 짜장면 몇 그릇 울궈먹고 갔다. 몇 달 못 보던 사이에 키가 훌쩍 자라 있었다. 아무래도 스승의 날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