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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희 양산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지원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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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5살짜리 딸과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어린이집에서 ○○가 자기와 안 놀아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넌 어떻게 하니?’라고 되물으니 “○○말고 △△가 나와 같이 놀아줘서 괜찮아요”라고 했다. 왕따 해결에 대한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이 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다른 친구와 놀 수 있으면 괜찮은 것이다. 5살짜리는 너무나도 쉽게 해법에 접근을 하는데 초등학생 이상의 청소년들은 그것이 힘들다.
폭력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서로 사이좋은 초등학생들이 자기의 비밀을 한 가지씩 얘기하면서 그것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촬영을 한다. 왜 그럴까? 나중에 배신하는 친구가 생길 때 그것을 협박용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처음 그 얘기를 들으며 ‘그 아이들이 친구가 맞나요?’라고 되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학교에서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도 아니고 일진 무리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또래집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이 ‘우리 학교 애들 다 그렇게 해요’라고 했다고 한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아이들, 그래서 두려운 아이들, 끊임없이 친구의 약점을 수집하여 자기의 보호막을 만들어야 되는 아이들.
이렇게 하는 것이 마냥 철모르는 아이들의 장난일 뿐일까? 언제 내 친구가 배신을 하고 나의 뒤통수에 칼을 꽂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늘 긴장해야 되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긴장과 예민은 서로를 경계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경계는 ‘우리’라는 좋은 말을 배타성 강한 단어로 변질시킨다. 그래서 뭐든지 ‘우리’와 다른 것이 있다면 공격해야 되고 처단해야 되는 대상이 돼 버린다. 그 ‘우리’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지만 그 ‘우리’를 지키는 것도 만만치 않게 힘들다. ‘우리’와 다른 의견을 얘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쌓여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누군가에게 자기의 속상함을 얘기했다가 뒷담화를 했다는 오해로 불거져 왕따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오해는 인간을 가장 궁지로 모는 단어다. 궁지에 몰린 친구를 모두들 숨죽여 지켜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원인이 무엇이니를 캐고 있기에는 현실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것이 현재 아이들의 문화고 학원문화라면 그 의식을 바꾸기 위한 장기간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친구의 약점은 도와주고 지지해줘야 하는 것이라는 것, 다음 피해자는 침묵하는 나라는 것, 친구를 괴롭히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 다수와 다른 내 의견을 얘길 해도 안전할 수 있는 것, 다른 것에 대한 관심과 수용, 오해나 의견 대립이 있을 때 그 일과 상관이 없는 중재자가 있는 상태에서 함께 얘기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왕따나 친구들과 관계가 소원해진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만들어 쉬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전학생에 대해서 반 아이들이 다 같이 환영 이벤트를 하는 등 어른들이 아웃라인은 만들어 주면 아이들이 직접 노력하여 참여하게끔 했을 때 의식도 바뀌고 문화도 뒤따라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