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臥薪嘗膽)
臥 누울 와 薪 섶 신 嘗 맛볼 상 膽 쓸개 담
섶에 누워 쓸개를 씹는다는 뜻으로, 복수의 일념으로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이르는 말
출전 : 사기(史記)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월(越)나라 왕 구천과 싸워 크게 패한 오(吳)나라 왕 합려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합려는 죽어가면서 태자인 부차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는 말을 남겼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의 유명(遺命)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네 아버지를 죽인 자는 월왕 구천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차는 그럴 때마다 “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3년 이내에 반드시 원수를 갚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밤낮으로 복수를 맹세하며 오로지 병사를 훈련시켜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가 간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와 함께 오왕의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 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 농군이 돼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이로부터 20년이 흐른 뒷날, 월나라 왕 구천이 오를 쳐 이겨 오왕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굴욕을 씻었다. 부차는 구천이 자신을 용동으로 귀양보내려 하자 스스로 목을 쳐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지방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과거 고배를 마셨던 인물들이 은인자중하면서 뒤로 칼을 갈고 있다. 이들 역시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양산향교(385-4511)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