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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하북면 순지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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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필생의 사업으로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하게 추진한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착공해 불과 2년 6개월 만에 1970년 7월 전 구간 개통했다. 당시만 해도 국가경제 수준이 미약했고, 국가 재정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독일과 이태리 등 유럽 선진국을 둘러본 뒤 국가 기간산업으로 고속도로가 꼭 필요하다는 신념 아래 국회를 설득해 사업을 추진했다. 정주영의 현대건설을 비롯한 국내 굴지의 대규모 건설회사와 국군 공병부대가 구간을 분담하여 돌관작업을 한 끝에 완공했지만 그 이면에는 공사현장에서 많은 기술자와 근로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 2008년 하북면 순지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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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북정에서 본 고속도로와 북정동 (19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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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구 범어사 입구는 팔송이라고 불리며 양산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동래에서 출발한 언양행 ‘빨간 버스’는 푸른 제복을 입은 안내양이 동승해 차비를 받았다. 노포동을 지나 동면으로 넘어오는 고개부터는 ‘마의 비탈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송 못 인근까지 고개를 넘어오는 동안 버스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서 곡예를 하기 시작한다. 울퉁불퉁 노면에 계속되는 커브는 좌석에 앉아있는 승객마저 용수철처럼 튀어오르게 했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게도 한다. 그런가 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비포장 자갈길이라 한번 버스가 지나가면 그 먼지는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1990년대 말 양산시내에 소도읍가꾸기 사업이 진행되기까지 읍내 도로변에 위치한 집이나 가게는 그야말로 회색 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 하북정에서 본 고속도로와 북정동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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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읍내를 벗어나 북정을 지나노라면 도로변에 넓게 자리한 들판에서는 철에 따라 푸른 초원이 되었다가 누런 황금들녁이 되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소토 쯤에는 당시 유명한 옹기굴이 있었다. 고을 주변에서 필요로 하는 단지나 장독 등 옹기제품을 만드는 곳이었다.
하북면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통도사가 있어 예부터 관광객들이 많이 찾던 지역이다. 오히려 최근 들어 지역발전이 더딘 낙후지역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는 인근 울주군 삼남면에 있는 삼성전관(지금은 삼성SDI로 바뀌었다) 생산라인이 줄어들면서 종사자가 격감한 원인도 있다. 또 통도사 인터체인지가 시 경계지역까지 옮겨간 것도 나쁜 영향을 끼쳤다.
↑↑ 1970년 양산 방문을 위해 물금역에 내린 박정희 전 대통령이 환영나온 시민들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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