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약무인(傍若無人)
傍 곁 방 若 같을 약 無 없을 무 人 사람 인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으로,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
출전 : 사기(史記)의 자객열전(刺客列傳)
중국 위(衛)나라 사람인 형가(荊軻)는 성격이 침착하고 생각이 깊으며, 문학과 무예에 능했으나 술을 즐기는 애주가였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 청운을 품고 위(魏)나라의 원군(元君)에게 국정에 대한 자신의 포부와 건의를 피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연(燕)나라 및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현인과 호걸과 사귀기를 즐겼다.
그러다가 비파(琵琶)의 명수인 연나라의 고점리(高漸離)와 사귀게 되는데 두 사람은 호흡이 잘 맞아 금방 친한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이 만나 술판을 벌여 취기가 돌게 되면, 고점리는 비파를 켜고, 형가는 이에 맞추어 춤을 추며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처량한 신세를 한탄해 감정이 복받치면 둘이 얼싸안고 울다가 웃기도 했다고 한다. 이때 이 모습은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고 해서 방약무인이라는 말이 생겼다. 원래 방약무인은 아무 거리낌없이 당당한 태도를 말했는데 변해서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무례하거나 교만한 태도를 표현할 때 인용된다.
진나라의 정(政, 훗날 시황제)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연나라의 태자 단(丹)이 형가의 재주를 높이 평가해 그에게 진시황제 암살을 부탁했다. 형가는 단의 부탁으로 진시황제 암살을 기도했지만 황제의 관복만 뚫었을 뿐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그는 진시황제에게 죽임을 당했다.
형가는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진(秦)나라로 떠나기 전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찬데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不還>”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양산향교(385-4511)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