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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의 순간이었다. 원동중 야구부는 모두 함께 그라운드로 나가 부둥켜안고 울었다. 터질듯한 환호성이 부산 구덕운동장을 가득 매웠다. 우승 목걸이를 건네받는 순간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양산리틀야구단에서 시작한 야구
부산 한 중학교 야구부 입단 실패
초등학교 6학년 때 양산리틀야구단에서 처음 야구를 접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무심코 따라갔던 야구단이었기에 정해진 포지션도 없이 나는 그저 그런 선수로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 녀석이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나도 해보고 싶었다. ‘국가대표’. 그때부터 야구는 내 인생의 전부처럼 다가왔다. 기회가 없을 뿐이지 누군가 나를 믿고 기회만 준다면 누구보다 잘 할 자신도 생겼다. 그래서 야구부가 있는 부산 사직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기회는 내 것이 아니었다. 변변한 이력이 없던 나는 야구부에 입단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운동장에서 훈련하고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매일 아침 먼 거리를 통학 시키느라 고생하는 부모님께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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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팀에서 그 정도 성적을 바라는 건 ‘기적’이 없이는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더구나 학생 수가 적어 언제 폐교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도는 학교에 선뜻 지원할 수 없었다. 긴 고민 끝에 진학을 결정했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자는 생각이었다.
처음 동료들을 마주했을 때 불안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나를 포함한 11명의 선수 모두 어느 중학교 야구부에서도 부름을 받지 못했거나 적응을 하지 못한 2류 선수들이었다. ‘이 팀으로 성적을 낼 수 있을까?, 내가 잘못 선택한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함께 훈련하는 동안 적어도 야구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1명 선수 모두 꿈을 쫒아 이곳까지 온 만큼 야구에 대한 꿈과 열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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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콜드패’, ‘꼴찌’라는 꼬리표 달아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연습경기를 할 만한 실력조차 못됐다. 어쩌다 경기를 하는 날에는 콜드게임으로 지기 바빴다. 한때 10점 차 이하로 지는 것이 목표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만년 콜드패’, ‘꼴찌’, ‘2류’ 라는 꼬리표는 오히려 우리에게 자극제가 됐다. 패배에 대한 아쉬움 따위는 느낄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를 선택하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우리도 잘 할 수 있다”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로부터 3년 뒤 마침내 우리는 경주시장기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모두들 ‘기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실력’이라 자부했다.
경주대회 우승 이후 자신감이 붙었던 우리는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설렜다.
각 시ㆍ도 예선을 거쳐 올라온 33개팀이 자웅을 가리는 전국 최고의 대회 대통령기. 경남도 예선에서 우리는 지난 소년체전 경남대표선발전 결승에서 패한 신월중을 6대 5로 꺾고 당당히 경남대표로 출전하게 됐다.
대진표를 받아 첫 상대가 올해 소년체전 우승팀인 포항제철중인 것을 알게 됐을 때도 실망감보다는 자신감이 더 컸다. 우리에겐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포항제철중은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느 팀보다 강했다.
하지만 우리 또한 어느덧 강팀으로 성장해 있었다. 결과는 3대 2. 첫 승을 했을 때만큼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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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서 패색 짙던 마지막회 극적 동점타
포항제철중과의 경기 이후 결승까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갔다. 16강전 상대였던 인천 재능중을 7대 0 콜드승으로 제압하고 부산 대천중을 4대 1로 물리치며 4강에 진출했다. 서울 양천중과의 4강전에서 2대 0 승리를 거두며 결승무대에 진출한 뒤 비로소 그토록 기다리던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선수들은 결승전을 앞두고 아무 말도 없었지만 모두의 눈빛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우승이었다.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결승전. 초반 분위기는 우리 쪽이었다. 우리는 매회 득점을 올린 반면 상대는 1점을 만회하는데 그쳤다. 남은 이닝은 4이닝. 우승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 그즈음 상대팀 반격이 시작됐다. 연거푸 3득점을 내주며 4대 3으로 역전됐다. 갑자기 다급해졌다.
마지막 7회 말 남은 아웃카운트는 2개. 불행인지 행운인지 다음이 내 타석이었다. 잘못하면 내 차례에 경기가 종료될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타석에 섰다. 오로지 공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결과는 안타. 4대 4동점이 됐다. 그러나 기뻐할 여유가 없었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
후속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번트를 대려고 배트를 내밀었지만 코스가 좋지 못했다. 2루로 뛰던 나는 아웃되고 말았다. 아쉬웠다. 2사 1루. 연장전을 준비해야 할 참이었다. 바로 그때. ‘딱’ 경쾌한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모든 관중이 일어섰다. 끝내기 안타였다.
2류가 마침내 1류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