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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이운용교수의 인도 비즈니스
힌디어와 우리말의 어원은 하나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8/13 11:00 수정 2013.08.13 11:00
⑧ 인도말과 우리말 – 1




↑↑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특별하다! 라는 메세지를 담은 인도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한 장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인도는 다양한 언어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1976년 대학 1학년 때 처음 힌디어(語)를 배우면서 교수님께 힌디가 혹시 우리말의 뿌리는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했었다. 그때 교수님으로 부터 ‘쓸데 없는데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핀잔만 들었다.

그후 대학을 졸업하고 코트라에 입사해 인도 뉴델리 무역관에 발령받아 가기 전까지 힌디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사실 인도에서는 힌디어를 한마디도 못해도 지낼 수 있다. 특히 비즈니스는 인도인끼리도 영어로 한다는 이야기를 코트라 선배들에게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힌디 책은 인도 가는 날까지 들쳐보지도 않았다.

1990년 3월 31일 인도에서 첫 아침을 맞았다. 인도는 서울보다 3시간 반이 늦어서 새벽 다섯시도 되기 전에 눈이 떠졌다. 마침 같이 잠이 깬 집사람이 조용히 해보라는 시늉을 하면서 멀리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누가 한국 방송을 틀어놓은 것 같다고 했다. 마침 뉴스시간대였다. 언뜻 들으니 우리말 방송 같기도 했으나 귀를 기울이니 힌디 뉴스였다. 집안일하는 인도인들이 새벽부터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은 것이었다.

인도어는 우리말의 뿌리?

이때 언뜻 15년 전 힌디와 우리말이 같은 뿌리 아닐까 하던 나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힌디를 전혀 모르는 집사람이 우리말 아니냐고 물었던 것도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해 여름 한국에 출장 갔을 때 힌디사전과 한국어 어원을 연구한 책들을 10여권을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틈틈이 우리말과 인도어의 유사성을 찾아보았다. 특히 친족 간 호칭, 신체, 농업 등 생활 속의 비슷한 기초단어를 찾는 것으로 나의 긴 여정은 시작됐다.

1993년 잠시 귀국했다가, 1996년 10월 또 다시 남인도 첸나이 무역관장으로 발령받아 나갈 땐 관련 책 등 보다 많은 준비를 해가지고 갔다. 1997년 1월부터는 타밀 고어(古語)를 연구하는 석사 출신 일랑고를 매주 두 번 무역관에 초대해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말과 인도어를 비교해 보았다. 이때 북인도어 보다는 남인도어가 우리말과 더욱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삼호동에 있는 효암고등학교 채현국 이사장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오신 분인데 평소 역사와 철학, 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시곤 한다. 채 이사장님은 인류가 과거 유목민 시절에는 언어 체계 속에 시간과 공간이 동일시 됐다고 주장하시는데, 그 근거로서 ‘녘’자를 드신다. 동녘, 서녘, 들녘의 ‘녘’자는 공간, 방향 또는 장소를 의미하는데 새벽녘, 저녘, 해 저물녘 할 때의 ‘녘’자는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녘’자가 시간과 공간에 같이 쓰인 것은 시공을 동일시하던 흔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목생활을 하던 당시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쪽 끝 만주까지 이동하는데 1년이 걸린다고 하면, 두 무리가 나뉘어 출발하면서 약속할 때 ‘만주에서 만나자’는 말이나 ‘1년 후에 만나자’는 말은 같은 의미였다는 것이다. 언어에서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것은 농경생활을 하면서부터라고 하시는데 여러가지 부연 설명을 들어보니 참 일리가 있는 견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고대의 언어를 비교하고 유추해 보려면 역사, 철학, 종교 등은 물론 때로는 시공을 초월한 직관도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지금부터 이런 관점에서 인도어와 우리말의 관계를 살펴보자.

↑↑ 10루피와 100루피 화폐의 뒷면, 좌측에 15개 언어가 명기되어 있다.
어순(語順)과 조사(助詞) 용법이 흡사

우리말과 남인도어는 역사의 어느 한 기간 동안 한국과 인도가 삶을 공유한 기간이 있거나 대규모의 종족집단 이주 등이 있었다고 해야만 가능할 정도로 기초어휘, 문법 등에서 흡사한 면을 보였다. 인도어와 우리말의 유사성을 언급한 학자로는 H.Koppelman, H.Guntert, A.Eckardt 등이 있고 헐버트 선교사와 K.Menges, Bouda는 우리말이 인도남부의 드라비다어와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북인도에서 공부한 것을 먼저 살펴보자. 힌디는 어순이 우리와 같을 뿐 아니라 주격, 목적격, 소유격, 여격 조사 등 ‘조사’ 용법이 우리와 흡사하다. 이점은 남인도 타밀어도 마찬가지다. 영어의 전치사 용법과 대비하여 우리말의 ‘조사’용법은 후치사 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타밀어는 거의 완벽하게 이 조사용법이 우리와 같다.


<힌디>

이것은  무엇  이니?
야         끼야    헤?
 
이사람  누구  이니?
야           꼰      헤?
 
너(는)  망고를  먹었다.
뚜(네)      암       카야.
 
나는  람(을)  안다.
메      람(꼬)  잔따 훙
 
당신(의)  나라는  인도  다.
압    (까)    데시    바랏  헤.
 
나는  너(에게)  책을  주었다.
메       뚬(꼬)      끼땁    디야.
 
<타밀>

너의  집은  부산(에)  있습니다.
운      비드  부산(일)  이르끼라드.
 
오랜만에 힌디 기초 문법을 공부하면서 영어나 중국어와 달리 우리말과 어순이 같고 특히 영어에 없는 조사용법이 우리와 같다는 점에서, 나를 흥분하게 했던 대학교 1학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 지방마다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인도에서는, 정부 간의 문서 소통과 비즈니스에서 영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한 학교 체육행사의 한 장면.
엄마, 아빠, 아버지, 언니

남인도의 시골이나 빈민가에 가면 어린 아이들이 ‘엄마’하면서 자기 엄마한테 뛰어가 안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첸나이에서 근무하던 97년 여름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집으로 온 전화를 아들 정우가 받더니 ‘아버지 전화 왔어요’하고 나를 불렀다. 받아보니 주정부 산업부 차관 스리니바산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에 물어본다. 너의 아들이 ‘아버지’하던데 그게 Father라는 뜻이냐? 그렇다고 하니 자기들도 아버지라고 부른단다. 나는 타밀어로는 ‘엄마’, ‘아빠’라고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니까 약간의 예를 갖추는 경우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했다.

타밀어에서 엄마, 아빠, 언니가 발음과 뜻이 우리와 똑 같다는 것은 알았어도 아버지까지 같다는 것은 의외였다. 인도 남부 드라비다족은 엄마를 ‘엄마(암마)’,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거나 ‘아버지’라고 한다. 또한 오빠의 부인을 언니(안니)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와 같다. 오빠를 ‘안나’라고 하는 점이 우리와 다른데 ‘누나’라는 우리말이 어떤 힌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언어학자 몇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더니 엄마, 아빠 같은 단어에서 구순음이 같다는 것은 대부분의 언어의 일반적인 현상이므로 대수롭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인도와 한국처럼 멀리 떨어진 나라의 생활의 기초단어가 더욱이 가장 가까운 부모형제간의 호칭이 대부분이 우리와 똑 같다는 것은 오히려 두 언어가 같다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 이운용

한국외대 인도어과
한국외대 지역대학원 정치학 석사
인도 첸나이무역관 관장
한국인도학회 부회장(현)
영산대 인도연구소장(현)
영산대 인도비즈니스학과 교수(현)
영산대 기획처장(현)
왜 가까운 중국인들이 엄마,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멀리 떨어진 남인도인들이 엄마, 아빠, 아버지, 언니라고 할까? 인도 남부에서는 어머니 신(god)을 Amman 신이라고 하며 이 신에게 바치는 공물을 ‘암만셀라이’라고 한다. 셀라이는 인도 여성이 입는 사리를 말한다. 문어체에서 대부분 단어 끝에 n을 붙이고 구어체에서는 n을 떼므로 amman은 amma(엄마)를 나타낸다. 요르단에 있는 신전 이름이 ‘암몬’ 신전인데 이 신전이 여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아파치’라는 호칭은 무엇일까? ‘엄마, 아빠, 아버지, 언니’라는 호칭만으로도 역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볼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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