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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빛과소금] 신 삼종지도(新 三從之道) 시대..
오피니언

[빛과소금] 신 삼종지도(新 三從之道) 시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8/13 11:32 수정 2013.08.13 11:32



↑↑ 강진상 목사
평산교회
조선 시대에 여성의 예속적인 지위와 구실을 표시한 규범이 ‘삼종지도(三從之道)’다. 그 도덕률은 재가종부(在家從父)라 어려서는 아비를 따르고, 적인종부(敵人從夫)라 시집가서는 지아비를 따르며, 거사종자(去死從子)라 남편이 죽으면 아들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신 삼종지도’(新 三從之道)로 변했다. 남자가 어려서는 어미의 뜻을 따르고(재가종모, 在家從母), 결혼해서는 아내를 따르며(적인종처, 敵人從妻), 아내가 죽은 후 늙어서는 딸을 따라야 한다(거사종녀, 去死從女)는 것이다.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려면 남자는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렸을 때에는 엄마의 말을, 결혼해서는 아내의 말을, 운전할 때에는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명한 남자는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주장대로 살아가는 강한 남자가 아니라,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남자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여자의 말을 잘 듣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조선시대 성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이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종침교(琮琛橋)라는 다리가 있었다. 지금은 다리는 없어지고 다리표지석만 남아 있지만,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조선 성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과 허침 형제가 갑자사화(甲子士禍)의 화를 면한 일화가 얽혀 있는 경복궁 입구 다리 터’.

그 일화는 이렇다. 당시 성종은 연산군을 낳은 왕후 윤씨를 폐비시키고 사약을 내려 죽게 만들었다. 왕후 윤씨를 폐비시키기 위한 어전회의가 열리던 날, 허종의 누이가 어전으로 가는 허종을 불렀다. 그리고 “오늘 어전회의에 나가면 훗날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며 “어떻게 해서든지 어전회의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허종은 누이의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어전으로 가던 중 궁궐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종침교에서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 그것을 핑계 삼아 허종은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어전회의에서 왕후 윤씨를 폐비시키기로 결했고, 폐비가 된 윤씨는 다음해에 사약을 받아 죽게 된다. 성종이 승하하고 폐비가 된 윤씨의 아들 연산군이 즉위하자 연산군은 임사홍의 밀고로 그의 어머니가 내쫓기고 죽게 된 경위를 알게 됐다. 그 죽음을 원통히 생각해 후궁 엄ㆍ정 두 숙의와 안양군ㆍ봉안군, 인수대비를 죽이고 당시 회의에 참석해 폐비를 결정했던 대신들을 찾아 죽이는 ‘갑자사화’를 일으켰다. 허종과 허침은 이 다리에서 떨어져 화를 면했으므로 그 뒤부터 다리 이름을 허종 허침 형제의 이름을 따서 종침교라고 이름 붙였다.
지혜자 솔로몬은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잠언1:5)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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