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공감하는 사업이 있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업하겠다고 제 주머니 있는 돈을 내놓으라면 모두가 고개를 젓는다. 지금 교육청과 지자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산지역 초등학교 이설 갈등도 결국 대책은 필요하다면서, 제 주머니는 털지 않겠다는 제로섬 게임의 결과다. 거기에 볼모는 결국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다.
지난 21일 윤영석 국회의원과 성경호 교육위원이 어곡초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가졌고, 같은 날 나동연 시장과 공영권 교육장, 최영호 시의원이 만나 소토초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해 학부모들의 원성만 샀다. 이들은 모두 대책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지만 문제는 예산.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말했다.
“예산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가 또하나 있다. 양주중 때문이다. 어곡ㆍ소토초와 마찬가지로 학교 인근에 공단이 들어설 예정이기에 어떠한 형태이든 대책이 필요하다. 양주중 역시 돈의 논리로 서로 책임만 떠넘긴다면 제2의 어곡ㆍ소토초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래서 정리했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지금까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왔는지 말이다.
어곡초 이설 예산 놓고 ‘핑퐁게임’
2011년 9월 어곡초는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였다. ‘공장 악취와 소음 등으로 학습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10여년 동안 끈질기게 요구해온 학교 이설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중앙투융자심사를 통해 최종 승인한 것이다.
학부모는 물론 지역사회 모두가 반겼다. 더욱이 환경문제로 학교 이설이 결정된 것은 전국 최초로, 틀에 박힌 규정과 싸워 이겼다는 성취감마저 들었다.
그로부터 1년 후, 황당한 소식이 전해졌다. 교과부가 국비 지원은 안된다는 조건으로 승인했다는 것이다. 투융자심사 결과문서에는 ‘인근사업자 및 지자체 주변 환경정비’ 조건으로 승인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이것이 ‘학교설립 이후 공장들이 들어서 환경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원인제공자인 공장주와 공장 허가를 내 준 지자체에서 이설 예산을 전부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 교과부측 설명이었다.
이설이 결정됐다고 알려진 상황에 손을 놓을 수는 없다. 학부모와 관계기관, 정치권까지 나서 19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조달할 방법을 찾느라 고군분투했다.
책임론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환경오염 원인제공자인 공장주를 찾았다. 협의 끝에 현재 어곡초 건물과 부지 매입을 약속받았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다음은 허가권자인 지자체를 찾았다. 양산시는 ‘양산공단과 어곡산단 허가는 경남도 소관’이라고 통보해 왔다. 경남도는 ‘공장에 대한 세수는 양산시로 편입되니 지원 의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학교 책임기관인 경남도교육청 역시 ‘자체 예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단 한차례의 예산편성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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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토초등학교 정문 앞 산막산단 진입도로 공사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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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와 학생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들 기관에 진정서를 보냈지만 여전히 ‘불가’ 답변만 받았다.
학부모들은 “지금까지 수십차례 간담회를 했다. 정치권에서, 교육청에서, 학교단체에서 시도때도 없이 연락이 온다. 그럴 때면 항상 ‘오늘은 방법을 찾겠지’, ‘희소식이 있겠지’라는 기대감으로 열일을 재치고 참석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진행된 것이 없다. 시행령 개정이니 불용예산 신청이니 학부모들은 잘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학교를 두고 공공기관들이 예산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는 것과 그러는 사이 우리 아이들이 지금도 악취와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소토초 통학차량 “예산지원 근거 없다”
2005년 10월 ‘소토초 이전 등 대책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소토초 주변 환경이 고속도로와 공장으로 둘러싸일 형국이었다. 하지만 의견차가 있었다. 해결을 위해 학교 이설을 주장하는 측과 그 비용으로 차라리 학교시설개선을 하자는 측으로 나뉘었다. 수차례 논의하다 결국 이설을 포기했다. 대신 학교에 새 교실과 체육관이 지어졌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2007년 학교 스쿨존이 산단 출입도로에 편입됐고, 공업지역인 학교 인근에 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다. 2010년 학교 이설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지만, 이설 예산 대신에 만든 체육관이 발목을 잡았다. 교육청은 ‘20년 BTL사업으로 지었기 때문에 2028년까지는 꼼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제 학생들은 학원차가 등ㆍ하교시켜주지 않으면 학교를 갈 수 없는 상황에까지 놓이게 됐다. 걸어서 갈 수 없는 것은 물론, 버스를 타더라도 정류장에 내려 학교로 가는 길이 위험천만 그 자체다. 매달 14~15만원의 학원비가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의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학생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학원을 다니고 있다.
때문에 통학차량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교육청과 지자체는 선뜻 예산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원근거가 없다는 것과 선례가 되면 안 된다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교육청은 소규모학교를 통ㆍ폐합 했을 때만 통학차량 지원이 된다는 설명이다. 사실이다. 밀양의 한 초등학교의 경우 세 학교가 통ㆍ폐합해 34인승 버스 3대가 지원됐다. 하지만 학생 수는 62명이다. 전교생이 이용하고도 유치원과 인근 중학교까지 이용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하지만 정작 기초생활수급자 학생들이라도 이용하도록 버스 한 대만 지원해 달라는 소토초의 요구에는 ‘지원 근거가 없다’는 대답뿐이다.
양산시도 난색을 표했다. 교육청이 공단 조성과 공장 허가의 원인이 되는 지자체가 지원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양산시 역시 통학차량을 지원할 근거를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한 현재 통학차량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양산지역 학교가 많은 상황에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학부모들은 “통학차량은 정말 최소한의 요구다. 공장을 난립시키고 학교 스쿨존에 공단진입도로를 만든 양산시나 20년 BTL사업으로 학교를 꼼짝 못하게 만든 교육청, 두 기관 모두 고작 통학차량 지원 가지고 예산 운운하며 싸우고 있어서는 안된다. 학교 이설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할 상황에 통학차량을 놓고 핑퐁하고 있는 게 말이 되는가. 답답할 따름이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