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햇빛이 기름띠처럼 떠다니는 나의 성지(聖地),
젖가슴만한 무덤들 사이에
나는 수혈 받는 사람처럼 누워 쉰다
삶은 힘차고 힘겨우며,
헛디뎌 뛰어들고 싶으리만치 어질어질하다
이곳은 고요도 숨죽일 만큼 고요하다
햇빛은 여기저기서 기둥을 만들었다가 흩어진다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것이나 다 되고 만다
나는 죽음의 희끗희끗한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숨 멈추고, 검은 젖을 깊이 빤다
이영광 시인
196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고려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빙폭’ 외 9편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직선 위에서 떨다’(창비, 2003)와 ‘그늘과 사귀다’(랜덤하우스, 200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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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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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무덤’을 ‘젖가슴’으로 치환해 생명과 죽음의 긴장, 그 에너지를 강렬하게 발산하고 있군요. 화자는 ‘젖가슴만한 무덤들 사이에’ ‘누워’서 죽음을 떠올립니다. 빨아들이거나 내쉬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고요’, 그런 죽음과도 같은 적요 속에서 ‘힘차고 힘겨우며, / 헛디뎌 뛰어들고 싶으리만치 어질어질’한 삶을 떠올립니다. ‘죽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면’이란 전제는 ‘죽음을 의식하라’ 는 말이겠지요. 죽음을 의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고 또 아무것이나 되고 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일 겁니다.
생명의 에너지는 삶과 죽음의 긴장 속에서 생성되는 것, 죽음을 의식하면 할수록 역으로 삶의 에너지도 많이 방출되는 것. 이 시는 생사의 양극적 자장 속에서 삶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통찰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