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역리칼럼] 등 터지는 새우들..
오피니언

[역리칼럼] 등 터지는 새우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9/03 11:25 수정 2013.09.03 11:25



↑↑ 손병호
남강역리연구원장
모 라디오 신청곡 프로그램에서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를 들려주면서 넌센스 퀴즈를 냈다. 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된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 서로 자존심이 강해서, 부끄러워서 고백을 못해서라는 등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정답은 이름 때문이었다. 둘 다 ‘갑’이었기 때문이었다.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세태가 세태인지라 무심코 웃을 수 만은 없었다.

드라마 모래시계 프로듀서였던 김종학 씨가 자살했다. 유명을 달리한 직접적인 동기는 아니지만 그의 안타까운 죽음 이면에는 방송국과 외주 제작사간의 부당한 ‘갑을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연초부터 시작된 금년의 화두는 갑을관계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갑을의 관계가 조정은 커녕 대립 양상만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주말, 남편이 조선소 하청업체에 근무한다던 30대 후반의 여성 내방객. 조선 경기 악화로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게 됐는데 모아 둔 돈은 넉넉치 않고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노사분규로 양산지역 공단도 심각한 고용 불안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분쟁으로 조업 단축 내지 중단 상황으로 자칫 실직까지 내몰리는 하청업체 직원 입장에서 노측의 요구는 별세계의 일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자녀에 대한 기술교육 지원비로만 천만원 지급요구. 꿈같은 이야기다.

명리학에 등라계갑(藤蘿繫甲)이라는 말이 있다. 등은 넝쿨나무를 말하고 갑은 큰나무를 의미한다. 사주에서는 나무를 음양으로 나누어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아름드리 소나무(갑목)와 같은 형상이며 다른 하나는 넝쿨식물과 같은 유약한 나무(을목)다. 소나무와 같이 곧게 자라는 식물은 홀로 존재할 수있지만 을목은 소나무와 같이 기댈 곳이 있어야 높이 타고 오를 수 있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의지 할 수 있을 때 생기가 나고 살 맛이 난다.

을목의 사주를 타고 난 사람은 갑목을 만나야 일이 풀린다. 허나 요즘 사회현상은 되려 을이 갑을 만나면 비참한 종말 뿐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어느 시대인들 황금만능시대가 아닌 때가 없었지만 확실히 요즘은 ‘돈이 입을 열면  모든 것은 입을 다무는, 닥치고 돈’의 시대다. 돈 앞에서 의리도, 상식도, 체면도, 예의도 없다. ‘웬수같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논리를 좇아 나보다 열악한 사람의 등에 빨대를 꽂아야 살아 남는다는 극단적 사고가 판을 친다. 심지어 자녀에게도 세습시키는 시대다. 

“선생님. ‘갑’으로 태어나는 사주가 원래부터 따로 있습니까” 언젠가 동네  술집에서 합석한 작업복의 남자 분이 내 명함을 보더니 다짜고짜 물어왔다.

고래들 싸움에 등이 터지는 불쌍한 새우, “내 평생 을이라도 한 번 돼 봤으면 원이 없겠다”며 쓴 소주를 목구멍으로 털어넣던 그 사람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이며 정신적인 가치만이 나와 가정의 미래를 지킨다”는 내 말이 제대로 들렸으랴. 내 자신도 어느새 마음의 언덕이 아닌 눈에 보이는 언덕(갑)에만 등을 비비려는 소(을)가 돼버렸는데.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