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문화가 산책] 나와 '시'의 길..
오피니언

[문화가 산책] 나와 '시'의 길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09/16 09:48 수정 2013.09.16 09:48



↑↑ 정경남
시인, 삽량문학회장
천성산 오르다 여러 갈래의 길을 만났다. 어느 쪽으로도 쉽게 가지 못해 주춤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남쪽으로 난 길을 돌아서 가라고 일러 줬다. 그것이 내 시의 길을 안내해 준 영산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에 들어오게 된 동기이다.

영산대학교와 나는 아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차들이 질주하는 현실 속의 길은 늘 무거워 잘 펴지지 않는 삶처럼 뻗어 나갈 힘에 겨웠지만, 그 길은 천성산 끝자락에 깊이 안겨있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새벽 안개와 한 몸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길을 도전의 과제로 생각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앙선이 없는 좁고 굽은 길이지만 그 길은 사유가 있고 풍광이 있는 마음이 들어 설 수 있는 길이었다.

새 길을 걷는 초입은 늘 가슴이 두근거렸고 마음은 봄꿈을 꾸는 것처럼 신열에 들뜨게 했다. 길의 끝엔 분명 무엇인가 있을 거라 믿어 왔지만 그러나 그 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이었다. 길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탁발을 하고 좌선에 든 노승처럼 길은 꿈쩍도 않고 앉아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 어둠속 미지의 꿈속에서 꾸었던 길인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산을 오르다 등이 굽은 산등성이에서 쉬고 있는데 산사 경내의 풍경 소리가 정적을 깬다. 그것이 내 몸속의 정적을 깨는 소리였다. ‘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사람들은 제각각 길을 간다. 과학자는 과학자의 길을, 의사는 의사의 길을 살아간다. 사람이 왔다가는 한 생애에 대해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했는데, 나의 길에 대해 골똘해졌다. 천성산은 내 안의 길이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험준한 길일지라도 결코 돌아오고 싶지 않다. 누가 남쪽으로 난 길을 돌아서 가라고 일러 줬을 때, 내 운명의 길은 이미 산문에 들어 다시 돌아 나오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시 쓰기는 도착이 아니다. 우리는 몸으로 맨발로 가야한다. 자아를 떠나야 한다. 시 쓰기를 위해 얼마나 멀리 도착해야 하는가? 멀리 방황하며 지치고 기쁨을 느껴야 하는가? 밤의 길이만큼 걸어야 한다. 자신의 밤만큼 어둠을 향해 자신을 통과해서 걸어가는 것만큼’. helenec 의 말을 되새기곤 한다.

음악인은 음악이 궁극적인 도전 과제이듯, 가슴 뛰는 삶은 결코 통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좇는 일일 것이다. 성공이나 도착이 없는 길 일지라도 그에 대한 도전 정신이 나를 살게 하기에 걸어도 끝없는 그 길을 사람들은 가려고 한다, 어떤 때는 길이 길을 가로 막는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길이 버티고 서서 나에게는 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저리쳐 돌아보면 제 자리 걸음 속에 갇힌 내 모습에 흠칫 놀라곤 한다.

세상을 살면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다.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연에 대해서 그 우연으로 인해 필연적인 ‘시’ 쓰기를 만날 수 있었다. 길을 잘 선택하여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만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아 떠날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길을 안내 해준 스승이 있었다. 배움의 길에 ‘큰 스승’이 있듯 영산대학교는 내 ‘시’의 길을 찾아준 큰 스승이다. 

잊혀져 있던 기억 한 컷이 마치 길의 한 토막처럼 시간의 공백을 뚫고 솟아오른다. 오래 잊고 있던 그 기억 상실이 되살아나, 내 안에 길 떠나기를 작심한, 글쓰기는 내 안에 길 찾기인 셈이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