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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백년만의 귀환 - 양산 부부총 유물 ②..
문화

백년만의 귀환 - 양산 부부총 유물 ②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11/05 11:01 수정 2013.11.05 11:01



본지는 1920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발굴된 뒤 일본으로 반출돼 도쿄국립박물관에 보관되다 93년 만에 고향으로 되돌아온 부부총 주요 유물을 특별전 기간 동안 지면을 통해 전시합니다. 양산시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과거 양산의 찬란했던 역사를 되짚어 보는 부부총 유물 특별전에 시민 여러분의 큰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금동제 말안장 꾸미개 金銅製鞍橋 / Bronze Saddle Ornament / 신라(6세기) 전륜(前輪) 높이 29.3㎝, 폭 40.8㎝ / 후륜(後輪) 높이 33.5㎝, 폭 49.7㎝

말안장꾸미개는 말을 타는 사람이 말에 올랐을 때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편하게 고정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말갖춤의 하나다. 이 말안장꾸미개는 나무재질의 전륜(前輪)과 후륜(後輪)을 먼저 만들어 전 후륜부의 바깥에 금동판을 씌우고 안쪽에는 가죽이나 삼베 등을 씌운 목심금동제(木心金銅製)다.

표면은 금동판에 물고기 비늘처럼 보이는 문양을 장식했으며, 뒷면에는 가죽이 일부 확인됐다. 앞쪽의 꾸미개는 약간 부푼 반원형이고, 양 끝에는 못구멍이 뚫려져 있다. 뒤쪽의 꾸미개는 앞쪽의 것과 유사하지만 안장의 가슴걸이와 밀치를 매는 끈을 연결하기 위한 장방형의 구멍이 각각 2개씩 뚫려있다. 이와 같은 말안장꾸미개의 부장은 무덤주인의 권력을 상징하는 최상의 물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용 은제허리띠 銀製銙帶 / Silver Belt / 신라(6세기) 鉸具 길이 4.2㎝ 폭 3.0㎝ / 銙板 길이 6㎝ 폭 3.2㎝ / 銙先金具 길이 9.1㎝

과대(銙帶)란 장식구가 부착된 허리띠를 말하는 것으로, 버클에 해당하는 띠고리, 허리띠 끝에 다는 띠끝꾸미개, 가죽 또는 비단 허리띠의 겉면을 꾸몄던 띠꾸미개, 허리띠에 매단 띠드리개로 구성된다. 부부총에서는 모두 36매(枚)의 정사각형(方形)의 허리띠장식으로 조립된 은제허리띠가 출토됐다.

각 허리띠장식 밑에는 하트모양의 수하부(垂下部)가 달려 있고, 그 밑으로는 각종 요패(腰佩)가 연결돼 있다. 허리띠장식 후면에는 가죽을 붙였던 흔적이 남아있다. 복식금제령에서 보면 신분상의 등급에 따라 허리띠장식의 재료ㆍ색ㆍ수를 달리해 등급표시의 상징으로 쓰였고, 삼국시대 특히 고신라시대 고분에서 금ㆍ은제의 수식(垂飾)이 붙은 우수한 허리띠장식이 확인됐다.



은제팔찌銀釧 / Sillver Bracelers / 직경 7.7cm / 신라(6세기)

과대(銙帶)란 장식구가 부착된 허리띠를 말하는 것으로, 버클에 해당하는 띠고리, 허리띠 끝에 다는 띠끝꾸미개, 가죽 또는 비단 허리띠의 겉면을 꾸몄던 띠꾸미개, 허리띠에 매단 띠드리개로 구성된다. 부부총에서는 모두 36매(枚)의 정사각형(方形)의 허리띠장식으로 조립된 은제허리띠가 출토됐다.

각 허리띠장식 밑에는 하트모양의 수하부(垂下部)가 달려 있고, 그 밑으로는 각종 요패(腰佩)가 연결돼 있다. 허리띠장식 후면에는 가죽을 붙였던 흔적이 남아있다. 복식금제령에서 보면 신분상의 등급에 따라 허리띠장식의 재료ㆍ색ㆍ수를 달리해 등급표시의 상징으로 쓰였고, 삼국시대 특히 고신라시대 고분에서 금ㆍ은제의 수식(垂飾)이 붙은 우수한 허리띠장식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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