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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명훈 물금고등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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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사실은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래, 이쯤에서 솔직히 고백하자. 우리 집안 남자 직계는 전부 대머리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콧수염이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대머리가 집안 내력인 것을 일찍부터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떡하든지 휑한 머리숱을 많아보이게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가발을 착용하지 않는 이상 그것을 감추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결국 결단을 내려야 했다. 감출 수 없다면 차라리 다 드러내자! 그래, 아예 머리를 빡빡 깎는 거다. 발상의 전환! 면도기를 구입해서 한 오라기 남기지 않고 머리털을 싹 다 밀었더니 속이 다 시원한 게 나름 두상도 예쁘고 괜찮았다. 하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밋밋하다고 해야 할까, 마치 백혈병에 걸린 환자처럼 온 얼굴이 허연 게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본격적으로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를 삭발하고 콧수염을 기르니 주변에서 말이 참 많았다. 한때 개그 프로에서 인기를 끌었던 ‘김쌤’을 닮았다느니, ‘홍석천’이 지나간다느니, ‘이상봉’이 양산에 내려왔다느니…. 수군대는 주변 사람들. 게다가 교사가 저렇게 하고 다녀도 되나? 하는 식의 자기만의 잣대로 나를 바라보는 뾰족한 눈초리들! 물론 그런 상황에도 나는 지금껏, 꿋꿋하게, 나의 이 빡빡머리와 콧수염을 고수하고 있다.
이쯤 됐으면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대충 눈치 챘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세상에서 내가 두 번째로 무서워하는 것, 바로 선입견. 나는 지금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유럽의 한 기자가 한국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는 왜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하나도 없나요?” 결코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속뜻을 진지하게 곱씹어봐야 한다.
이라크의 모든 남자가 콧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것이 우리 눈에 이상하게 보이듯, 콧수염을 아무도 기르지 않는 우리의 문화 또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국민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헷갈려하는 것은 잘못된 국어교육 탓이 아니라 우리 몸 유전자 속에 박혀있는 ‘남과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라는 부정적 선입견 때문이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선입견은 교육을 통해 재생산된다는 점에서 교단에 서 있는 우리 교사부터 선입견의 주술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예수님, 아인슈타인, 체 게바라, 찰리 채플린, 헤밍웨이, 반 고흐, 단재 신채호, 몽양 여운형 선생, 그리고 안중근 의사까지. 이 위대한 역사적 인물 또한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르고 다녔지만 어느 누구 하나 콧수염 때문에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유독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콧수염 따위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가? 콧수염 하나 용납 못하는 사회에서 무슨 장애인에 대한 편견 운운한단 말인가? 우습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첫 발걸음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 우리 자신 또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성숙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말인데, 제발 부탁한다. 나의 ‘콧수염’을 보지 말고 ‘나’를 봐달라고.
잠깐, 그런데 이 세상에서 내가 첫 번째로 무서워하는 건 뭐냐고? 아, 그걸 몰라서 묻나? 당연히 마누라지.
추신 : gexp999@daum.net 나도 독자들로부터 팬레터라는 걸 한 번 받아보고 싶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 메일 한 통 보내 달라. 아주 감격해서 하루 종일 행복할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