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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성 삽량문학회 회원 이팝시 동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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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문장 속에 ‘이중섭의 소’라는 글이 눈에 들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림을 전공했을 거라는 그녀의 말이 낙엽 소리로 플래쉬 백 된다.
제주도에 이중섭 미술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가 본적 없는 나는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는 그녀가 부럽기만 할 뿐이다.
그녀는 소에 대한 추억거리나 그와 관련된 일들은 딱히 없었다는 것이 내 기억인데 그녀가 이중섭의 소를 만나러 갔다.
엷은 해가 창에 내리는 오후 나절, 자투리 시간의 틈이 괜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나도 이중섭의 소를 불러 보았다.
화면 가득 피카소의 그림 같은, 이제 막 그림을 배운 어린 아이의 첫 작품 같은 매끄럽지 못한 붉은 배경을 가진 황금소가 내 눈을 맞춘다. 가만히 눈 속을 들려다본다.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황소의 눈망울이 젖어 있다. 처음 볼 때는 역동적이고 해학적이라 여겼는데 눈망울은 붉게 젖어 있는 것이다. 점점 그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무엇이 저 역동의 힘에 고삐를 묶었는가.
‘노을 속에서 울부짖는 소’는 당시의 그 현실을 핏발 선 두 눈 속에 모두 담고 있었으리, 그리고 차마 사람들이 할 수 없었던 그 말들을 꺼억꺼억 쏟아내고 있었으리.
이중섭의 소를 보고 스페인의 투우와 같이 무섭다고 말한 멕타가트에게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내가 그린 이 소는 싸우는 소가 아니라 착하고 고생하는 소중의 소, 우리소란 말이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가슴에 박힌다.
그녀는 제주도 미술관에서 이중섭을 만나고 나는 방에 앉아 이중섭의 소를 불러 와유를 즐겼다. 그새 하늘이 물든다. 그녀는 이중섭의 소를 보며 어떤 기억을 떠 올리고 왔을까.
나는 이중섭의 말 끝 따라 오래 전 부재한 소를 닮은 얼굴이 물기 머금고 겹쳐 옴을 느낀다.
*와유: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으로 집에서 명승이나 고적을 그린 그림을 보며 즐기는 것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