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뉴델리 무역관에 근무할 때 인도 직원 다난조이가 히말라야의 뜻을 아느냐고 내게 물었다. 내가 모른다고 하자 다난조이는 Himalaya 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온 말이며 him 또는 hima는 눈(snow), alaya는 집(house) 또는 거주지(abode)라고 한다. 따라서 ‘히말라야’는 ‘눈+집’의 뜻을 가진다고 설명하면서 ‘히말라야’ 또는 ‘히말라이’가 함께 쓰인다고 했다. 힌디의 경우 단어 끝의 자음은 모음 a 없이 발음되므로, 히말라야(himalaya)의 ya는 y만 발음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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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첸나이에서 50km 떨어진 해안마을인 마하발리뿌람에 있는 빤쯔라타 유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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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은 힌디 조어법의 여러 가지 예를 들면서 ‘힘+알라야’ 즉, ‘눈+집’이 맞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도 몇몇 힌디 전공 교수들에게 질문해 보아도 답은 같았다. 모두들 문법에 근거해서 설명하니 내 생각이 틀린 것 같았다. 그래도 ‘힘+말라야’ 즉 ‘눈+산’이 인간의, 특히 원시인의 사고방식에 자연스럽다는 혼자만의 생각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힌디로는 산을 ‘말라이’라고 한다. 상상력을 발휘해 원시시대로 가보자. 원시인들이 산을 보면 ‘말라이’라고 처음 지칭했다면, 히말라야 산을 만나도 ‘말라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단지 다른 산과는 달리 눈이 덮혀 있으니까 ‘눈산’(흰산)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하리라고 생각했으나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 갠지즈강 상류에서 평화로이 빨래하고 있는 인도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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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네팔에서는 눈 덮인 산, 즉, ‘눈산’을 ‘히말’(himal)이라고 한다. ‘힘(him)+말(mal)’에서 m 하나가 탈락, 아니면 ‘히+말’로 볼 수 있다. 또한 말라이(malai)에서 ai가 탈락하여 mal 만 남았다. 중요한 것은 네팔에서도 ‘눈+집’이 아니고 ‘눈+산’으로 부른다는 점이다. 네팔에서 부르는 산의 이름을 보면 안나뿌르나 히말, 마나슬루 히말, 가네시 히말 등이 있다.
↑↑ 인도 북쪽 히말라야를 배경을 두고 있는 산골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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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산을 뜻하는 ‘말라이’에 대해 살펴보자. 산은 높으므로 시간 흐름에 따라 높을 고, 사람에서 가장 높은 부분인 머리, 또 의미상으로 최고나 첫째의 뜻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우리 말 중에 ‘산마루’라는 단어에서 마루는 높은 곳을 의미하고, 종가(宗家)집 할 때 종의 훈과 음은 ‘마루 종’ 이다. 여기서 ‘마루’는 최고, 최초, 높다는 뜻을 가진다. 山(산)은 ‘뫼 산’ 으로 읽힌다. 또한 고려중기 언어에서는 高(높을 고)를 ‘모라’라고 발음했다고 한다.
↑↑ 한 사원에서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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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밀어로 나이가 가장 많다는 뜻을 mootha, mud, mut으로 표현하며 mudi라고도 한다. 우리가 ‘첫째’아들을 ‘맏’아들이라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여기서 뫼 산(山), 모라 고(高), 머리 두(頭) 에서 우리말과 인도어가 다같이 ma, mo, mal의 어소를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히말라이는 우리말로는 눈집보다는 눈산 또는 흰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서 ‘흰산’을 한자화 해보면 ‘흰 백(白)’ ‘뫼 산(山), 즉 白山(백산)의 가능성이 있다. 또한 ‘흰마루’, ‘흰머리’, ‘흰뫼’가 후에 마루, 머리, 뫼라는 산(山)의 뜻 뒤에 또 다시 산(山)이 추가된 것이라면 ‘흰마루산’, ‘흰머리산’이 되므로 한자로 전환시 ‘흰白+머리頭+뫼山’의 白頭山(백두산)과 연계할 수 있고, 또는 가장 높은 산이라는 뜻으로 마루山, 머리山이 될 가능성도 있다. 강화도의 마니산이 마리산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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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부터 시작한 연재를 끝낼 시기가 됐다. 2009년 9월에 그전에 쓴 책을 증보해서 새로 펴낸 <뉴델리에서 쓴 인도인, 인도상인>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연재를 시작한 것이 어언 3년이 됐다. 양산시민신문 박성진 편집국장과의 친분에서 비롯돼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인도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해준다는 명분이었다. 다행히도 독자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아 36회에 이르는 연재를 끝낼 수 있었다. 그동안 원고와 자료 정리를 도와주신 여러분들게 감사드린다.
인도사람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이다. 1990년부터 3년간 뉴델리 무역관에서 근무했고, 1996년부터 4년간 첸나이 무역관장으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인도인들은 자기의 모습이나 행동,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여 함께 공존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하고 배척하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동안의 연재가 인도를 상대로 한 기업인과 학생, 여행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그만큼 보람있는 일이겠다고 생각하며, 양산시민신문 독자들의 가정에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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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운용 한국외대 인도어과 한국외대 지역대학원 정치학 석사 인도 첸나이무역관 관장 한국인도학회 부회장(현) 영산대 인도연구소장(현) 영산대 인도비즈니스학과 교수(현) 영산대 기획처장(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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