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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봉석 양산중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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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나에겐 그런 카리스마가 없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 자리는 피하고 싶었다. 학생 전체 모임 할 때 앞에 나서서 질서를 잡는 것도, 사고치고 불려 와서도 턱쪼가리 치켜들고 적반하장으로 구는 녀석들 제압하는 것도 도무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젊은 남교사가 귀한 공립 중학교에서 나의 오만 가지 핑계는 말 그대로 핑계일 뿐이었고 나는 벌써 인성지도부장 1년차를 마감할 때가 다 돼간다.
사실 카리스마만 부족했던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선생인 나에겐 평범한 교사만큼의 교칙 확립 의지도 박약했다. ‘걸어 다니는 교칙’이어야 할 인성지도부장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방학이 끝나면 학생 중에 방학 때 했던 퍼머나 염색을 그대로 하고 학교에 오는 경우가 있다. 한 일주일 정도는 인성지도부에서 바쁘게 그 학생을 찾아내서 혼을 내고 당장 ‘원상 복귀’할 것을 지시한다. 그런데 어쩌면 좋은가? 내 눈에는 퍼머하고 염색한 머리가 밉지가 않다. ‘넌 퍼머하니까 인물 더 나네!’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꿀꺽 삼키고 ‘야 이 놈아, $$%%##’하고 호통을 쳐서 보냈다. 참 못할 짓이다.
이런 식이니 나에겐 인성지도부장 역할이 보람이기 보다는 고통에 가깝다. 난 규율과 질서로부터 좀 자유롭고 싶다. 학교가 정해놓은 규칙이 너무 많고 불편하다. 아이들을 마냥 어리게 보고 통제하려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난 좀 더 자유로운 학교 생활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인성지도부’라는 명칭도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요즘엔 인성도 경쟁력이라고 외치면서 스펙보다는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악당이 공부를 못해서 세계평화를 위협했던가? 하지만 인성이라는 것을 예의 바르고 윗사람 말 잘 듣는 것쯤으로 치부하는 단순함 앞에서 좌절한다. 인성조차 숫자로 등급을 매겨서 입시 근거 자료로 평가하려는 고수들의 신통방통한 능력 앞에서 또 한 번 좌절한다. 도대체 인성이라는 게 뭘까? 한 사람의 인성을 지도한다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인성이라고 하는 것이 똑같이 생긴 교복 속에 구겨 넣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싶을 뿐이다. 누가 좀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