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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총 2차 발굴작업을 주도하며 신기동 고분 발굴단장을 지낸 심봉근 박사의 말이다.
양산유물환수운동추진위원회(위원장 정연주)는 지난 5일 양산유물전시관에서 ‘신라시대 양산과 부부총 출토유물의 고고학적 위상’이라는 주제로 심봉근 박사를 초청해 학술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정연주 위원장은 “1920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발굴ㆍ조사돼 일본으로 반출된 뒤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양산 부부총 출토유물이 고국으로 돌아와 전시되고 있지만, 50일 후 다시 타향으로 떠나야 한다”며 “수년 전부터 민간을 중심으로 유물환수운동을 펼쳐왔으며, 이번 학술발표회 역시 환수운동의 일환으로 하루속히 부부총 유물이 영구히 환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심 박사는 북정고분군과 부부총을 통해 시간이 빚어낸 신라시대 양산의 위상과 역사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랜기간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임한 심 박사는 1990년 동아대박물관장을 지내며 5개월에 걸쳐 부부총 2차 발굴작업을 주도했다.
먼저 양산의 지리적인 역사적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심 박사는 “양산지역을 신라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지리적으로 가야와 일본과 인접해 있고, 백제를 멸망시킨 후에도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며 양산이 신라 초기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됐음을 설명했다.
이어 심 박사는 “사적 제93호로 지정된 북정동고분군 10호분으로 남아있는 부부총은 고분군 중에서 가장 큰 봉분”이라며 “부부로 추정되는 두 개의 인골은 관모와 복식, 장신구 등으로 미루어볼 때 삼국시대 신라의 귀족이나 왕조에 흡수된 지방 호족 또는 고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또한 “부부총은 낙동강 지류인 양산천 유역에 형성된 넓은 평야지대를 향해 뻗어 내린 능선 정상부를 따라 대형봉토분이 나란히 우뚝 솟아 있다”며 “이러한 고분군의 입지 양상은 가야지역의 일반적인 수장급 고분군과 매우 유사하지만 조사된 유구와 유물은 신라문화에 가깝다. 이러한 고분문화의 이중적 성격으로 인해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때문에 “부부총의 유물은 문화ㆍ역사적 가치로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떠나 양산의 정체성을 핵심적으로 알려주는 최고의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심봉근 박사는 동아대학교박물관장, 영남고고학회 회장을 맡았으며 제12대 동아대 총장을 지냈다. 특히 1990년 부부총 내부조사와 신기동 고분 발굴 단장으로 활약하며 양산지역 유적 연구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