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동안 우리 고장의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2008년 양산시가 편찬한 <양산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사진첩을 바탕으로 근대 이후 시민의 사는 모습과 주변의 풍광이 바뀌어 온 것들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보는 자리였다.
![]() |
↑↑ 1980년대 식량증산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됐던 퇴비증산운동 현장. 물금앞들로 추정되는데 이곳은 현재 물금신도시 3공구에 포함돼 택지로 조성되고 있다. |
ⓒ |
![]() |
↑↑ 1960년대 식수는 주로 간이상수도였다. 어느 마을에선가 내외 귀빈들이 모여 간이상수도 통수를 기념하는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
ⓒ |
1973년 당시 양산보다 규모가 더 컸던 동래군이 양산군으로 통폐합되면서 기장을 비롯해 일광, 장안, 서생면지역까지 규모를 키운 양산군은 1990년대까지 고속성장을 계속해오다 1996년 드디어 시로 승격하게 된다.
![]() |
↑↑ 1970년대 남부동에 있었던 우시장, 지금의 경동탕 부근이다. |
ⓒ |
이렇듯 도시의 외형적 성장은 실로 눈부시지만, 그에 따른 환경문제와 시민의 삶의 질 문제가 늘 시대의 이슈로 대두돼왔다. 경남도내에서도 가장 많은 골프장 등 난개발에 가까운 녹지의 대규모 훼손은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환경 관련 민원의 원인이 됐다. 최근에는 공업지역 내에서도 공해유발업종에 대한 반대 민원으로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으며, 대규모 산업단지 건설사업 추진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
↑↑ 1980년대의 사회상 중에는 반상회와 함께 관제 캠페인도 한몫했다. 골목을 누비며 근검절약을 홍보하고 있는 모습. |
ⓒ |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신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어차피 옛 것을 움켜쥐고 답습하던 세월이 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궁극적으로 시민이 잘 사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따름이다.
![]() |
↑↑ 1986년 정부의 추곡수매를 위해 검사가 종료된 나락가마니들이 농협창고에 보관되고 있다. |
ⓒ |
양산시 사진제공
![]() | ![]() | |
↑↑ 정동찬 양산향토사연구소장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