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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문화가 산책] 가난한 영혼의 슬픔을 위하여..
오피니언

[문화가 산책] 가난한 영혼의 슬픔을 위하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3/12/17 09:35 수정 2013.12.17 09:35



 
↑↑ 김백
시인
양산시인협회 회장
 
무서리 내린 지붕마다 겨울이 하얗게 깊어갑니다. 푸른 날들을 구가하던 마지막 달력 한 장, 마지막 잎새처럼 쓸쓸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인디언 부족들처럼 무소유의 달, 침묵하는 달, 나뭇가지가 뚝 부러지는 달입니다. 바야흐로 세모입니다. 나도 누군가의 그리움 앞에 서 있는 한 잎 마지막 잎새인지도 모릅니다.

간밤엔 바람이 많이 불었나 봅니다. 밤새 추위에 쫓겨 다니던 가랑잎들이 구석진 곳에 몰려 서로의 몸을 포개고 슬픔을 위무합니다. 더 이상 내려놓을 것도 없는 나목들은 아물지 않는 생채기 하나 쯤 그렇게 품고 사는 게 그들의 생이라는 듯 겨울 앞에 묵연히 서 있습니다. 봄을 향해 겨울의 심연을 건너가는 가난한 영혼은 슬픔입니다.

평산동 작은 숲속 음악공원에도 겨울이 깊어갑니다. 별빛처럼 쏟아지던 음악회의 잔향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숲속 벤치는 온기가 그립습니다. 슬픈 노숙의 그림자가 실루엣처럼 어른거리는 벤치에 앉으면 나는 고독한 도시의 섬이 됩니다. 측백나무 사이를 빠져나온 노란 달빛이 굽낮은 걸음으로 교교히 지나갑니다. 술집에서 나온 여자가 자존심처럼 구겨진 종이컵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갑니다. 숲은 키 큰 나무들의 연애로 술렁거립니다. 그리운 칸델라 불빛처럼 시린 가로등 아래 고요히 깊어가는, 아린 서정적 정경은 추위에 떨고 있는 사유의 깃을 세우는 페이소스입니다.

겨울밤 집으로 가는 길은 쓸쓸합니다. 희미한 골목길은 바람소리조차 빈 술병처럼 속빈 울음을 웁니다.

세모의 거리는 모두가 가난한 사랑입니다. 구세군 종소리가 인파를 헤치고 사랑을 외칩니다. 불구의 사내는 온 몸으로 지하철 바닥을 쓸며 흘러간 유행가로 사랑을 부릅니다.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를….

눈 덮인 가로수, 눈 덮인 전봇대, 눈 덮인 예배당. 어릴 적 소년의 눈 내리는 날의 캐럴은 그리도 가슴 설렜는지, 그리도 따뜻했는지.

이제 그 신성한 새벽이 다시 와서, 멀리 청탑의 종소리가 잠든 나를 깨우면, 나는 이 낯선 도회의 언덕 창을 열고 가슴속 두 손을 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의 찬가에 기도드릴 것입니다. 가난한 영혼의 슬픔을 위하여, 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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