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1920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발굴된 뒤 일본으로 반출돼 도쿄국립박물관에 보관되다 93년 만에 고향으로 되돌아온 부부총 주요 유물을 특별전 기간 동안 지면을 통해 전시합니다. 양산시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과거 양산의 찬란했던 역사를 되짚어 보는 부부총 유물 특별전에 시민 여러분의 큰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부부총 출토 목걸이와 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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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총 굵은 귀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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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총에서는 두 점의 목걸이가 출토됐다. 한 점은 주인이 매장된 자리에서 출토됐는데, 끝에 커다란 영롱한 초록색을 띠는 비취곡옥(曲玉)을 매달고 목을 두르는 끝에는 총 112점의 자주색 유리소옥(小玉)을 달아 완성했다. 주인 목걸이는 가운데 커다란 곡옥을 달고 나머지를 작은 소옥들로 꿰어 만들었다. 특히 외국인의 얼굴과 오리 등을 상감한 환옥이 달려있는데 이는 서아시아나 지중해지역에서 제작돼 신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인 목걸이가 단순하고 육중한 느낌을 준다면, 부인 목걸이는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준다. 특히 부인 목걸이는 실을 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발굴 당시에도 목걸이가 해체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귀걸이는 선사시대부터 꾸준히 제작된 장신구로 삼국시대에는 금속세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금, 금동, 은으로 만든 금속제 귀걸이가 크게 유행했다. 가야와 백제의 귀걸이는 모두 가는 고리 귀걸이이며 신라와 고구려에서만 굵은 고리 귀걸이가 만들어졌다.
부부총에서도 굵은고리 귀걸이 한 쌍과 가는 고리 귀걸이 한 쌍이 출토됐다. 그 중 굵은고리 귀걸이는 부인이 매장된 부분에서 출토됐는데, 중심고리의 너비가 3.15㎝나 된다. 중심고리와 직교하게 노는 고리를 연결하고 밑에 새끼를 꼬듯 연결고리를 만들어 작은 심엽형(심장모양의 나뭇잎)의 샛장식(步搖)을 여러 개 매달았다. 끝 부분에도 중간 크기와 작은 크기의 심엽형 샛장식으로 장식했다. 이러한 샛장식 형태는 이웃한 금조총 출토 굵은 고리 귀걸이와도 매우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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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총 주인 목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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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총 부인 목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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