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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희 영산대학교 대외교류처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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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에서 ‘장소’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작가나 큐레이터는 작품이 미술관 어디에 설치되는가를 깊이 고찰한다. 작품이 걸리는 장소에 따라 작품이 잘 살아나게 될 뿐만 아니라 작품 의미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미술에서 하나의 중요한 장르라 할 수 있는 장소특정 미술의 동기와 무관하지 않는데, 장소특정 미술에서는 설치물과 그것이 위치하는 장소의 특징을 결부시켜 그 관계를 드러냄으로써 예술적 표현을 시도한다.
장소특정 미술의 대가 리차드 세라는 1981년 작품 ‘틸티드 아크’에서 6.5cm 두께 대형 철판을 미국 뉴욕의 한 광장에 가로로 길게 세웠다. 이 조각품은 한 광장의 장소성에 개입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적 내러티브를 만들어 낸다. 조각품과 장소의 관계, 그리고 이를 경험하는 사람의 의식에 작용하고 새로이 생성되는 경험적 내러티브는 어떤 물건의 가치처럼 특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적으로 발현되는 추상적인 가치다.
예술가 크리스토는 생전에 장소특정 미술의 하나인 대지예술에 큰 획을 그었던 예술가다.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을 분홍색 천으로 그 주변에 둘러서 펼친 작품과 같이 대지나 대형 건물에 천을 이용해 그 장소의 특징에 대해 극적인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장소에 대한 새로운 감성을 제시했으며 대지를 바라보는 우리 시야를 넓혀줬다.
인간과 대지와의 관계는 근대에 와서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풀어가려는 학술적 노력이 있어왔다. 대지는 인류 진화와 역사에 걸쳐 관계를 가져온, 살고, 움직이고, 보고, 만져온 삶의 바탕인 것이다. 모든 이의 대지에 대한 경험은 서로 다르다.
양산은 아름다운 대지를 가지고 있다. 통도사가 자리한 영축산 기슭과 백두대간 낙동정맥을 이어가는 천성산을 가졌다. 이 아름다운 대지는 그 자체로써 자연의 예술품일 뿐만 아니라 역사에 걸쳐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대지는 형태 그 자체로 내러티브이며, 대지에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또한 내러티브이며, 현재 그 대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삶이 내러티브인 것이다.
이를테면 천성산은 널리 알려진 것과 같이 원효대사가 천 명의 성인을 배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성산, 대운산, 정족산 등 큰 산이 바라보는 중심에 위치한 나지막한 언덕과도 같은 배읍봉은 과거 군주가 하늘을 향해 천도재를 지내던 성스러운 산이었다고 알려진다. 천성산은 건강한 생태와 아름다운 자연을 가졌으며 그 산자락은 트래킹을 위해서도 훌륭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한편, 디지털 기술은 이와 같은 내러티브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나아가서 사람들의 경험을 증진시켜줄 수 있다. 인터넷, 3차원 그래픽, 스마트폰, GPS 등 기술을 이용하면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지역의 내러티브를 알릴 수도,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도 있다. 이것은 증강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이미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다. 실재의 경관이나 사물 위에 재미있고 유용한 정보를 겹쳐서 보여주는 증강현실이 그것이다.
한 도시의 가치는 창조적 내러티브가 상품이 되는 방향으로 나갔을 때 획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창조적 내러티브는 첨단 정보기술과 접목돼, 즉 융합적 접근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가진 콘텐츠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경을 넘어서서 지역의 콘텐츠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웹사이트를 제공하고, 통도사나 천성산을 찾는 방문자를 위해 지리정보와 함께 증강된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앱을 제공할 수 있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의 창조적 발굴과 그 스토리텔링이 무한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와 방법론을 활용해 증진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창조적 발굴은 창의성과 함께 잠재한 가치를 이야기로 풀어갈 수 있는 인문학적, 예술적 안목을 필요로 한다.
나아가서, 지역에 대한 다방면에서의 활발하고 깊은 연구는 지역의 스토리텔링을 더욱 풍부하게 할 것이며 지역 가치를 키워줄 것이다. 발굴되고 정리된 스토리텔링은 최신 정보기술을 통해 접근성이 높아지며 활용가치가 증대될 것이다. 이것은 인문학과 기술의 깊이 있는 융합을 필요로 한다.
무형의 가치를 발굴하고 증진시키는 콘텐츠 산업은 이야기와 생각, 그리고 경험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는 물리적 자원을 필요로 하는 종래의 산업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으로, 사람의 생각과 능력이 자원이 되며 무궁무진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