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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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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선거 속성 중에서 혈연과 지연, 학연의 3연(三緣)이 여전히 무시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쩌면 선거 당사자들이 그런 연대를 은연 중에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확산하려는 움직임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직선거법의 규정에 엄연히 학교 동창회나 종친회 등에 대한 개최 여건을 제한하고 있고, 이ㆍ통장이나 예비군중대장 등의 준공직자에 대한 선거운동 제한 등을 정해놓고 있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입후보자의 성향과 소신, 도덕성과 능력 여부보다는 자신과의 관계, 즉 친밀도에 의해 무작정 지지하는 경향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배우자의 역할이다. 선거에 직접 나서는 여성의 경우에는 다소 덜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배우자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일단 출마소식이 전해지면 먼저 그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흘러 나오게 된다. 출신부터 사회활동 성향에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등 여성에 대한 인기투표가 먼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정치권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은 미리 자기 배우자부터 잘 단속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선거에서 당선돼 정계에 진출한 뒤에도 배우자의 언행은 항상 도마 위에 오른다. 당선자의 명예에 걸맞게 적절하게 처신함으로써 세간의 칭송을 받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업보(業報)다. 우리나라에서 선출직이 되고자 한다면 본인의 가정사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실수담이나 숨기고 싶은 비밀조차 막무가내로 까발려지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점을 감안해 각오하고 나선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물며, 당선된 이후의 부적절한 언행이 도청도설(道聽塗說)에 회자됨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본인이 가진 결함에도 불구하고 배우자의 음덕에 힘입어 원하는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
현역 시의원이 지역구의 한 부녀회 모임에서 지폐를 감은 술잔을 돌렸다가 선관위에 적발돼 검찰에 고발되는 일이 있었다. 해당 의원은 모두 6~7만원에 불과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의 본질을 모르고 한 답변이 분명하다. 첫째는, 초등학생들도 알 정도로 돈에 대한 인식이 크게 잘못 됐다는 것이다. 해마다 한국은행에서 발권한 지폐 중 상당수가 못 쓰게 된 상태로 회수되고 있음은 돈에 대한 경시가 원인이다.
두번째로는, 어떤 경우라도 금품의 제공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사실이다. 금액이 적다해서 용인될 사안이 아니다. 특정 모임에 가서 그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한 금전제공 행위는 액수의 과다에 관계없이 위법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 잊어버렸던 술잔을 감은 돈이 그 모임의 결산에서 찬조금으로 처리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지방정치인 중에서도 시의원은 특히 서민들의 친구같은 존재다. 밑바닥 실정을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함께 느끼며 의논하는 대상이다. 실제로 큰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보다는 친한 이웃이나 친구로 느껴지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앞서 말한 3연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다. 지방자치가 20년이 됐지만 아직까지도 선진화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인 지역연고주의의 수혜자가 시의원이다. 시의원은 따라서 정당공천의 의미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중선거구제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와 관련된 움직임을 보면 당초 폐지 약속이 무산될 것처럼 보이는데 아쉬운 건 기초의원만이라도 정당공천을 폐지했으면 하는 것이다. 시민들 삶을 대변하는 시의원들이 정당을 내세우면서 묻지마 투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법 개정이 어렵다면 실제로 기초의원을 무공천하는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정치개혁은 국민인 유권자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지연과 혈연, 학연을 벗어나 오로지 시민을 위하는 시의원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