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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준 범어고등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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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은 조촐했다.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탓이기도 하겠지만, 잔치가 열리는 집 마당처럼 떠들썩하면서도 흥겨움이 넘치는 풍성함이 느껴지지 않아 3년 간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교무실에 돌아와 보니 책상에 선물과 쪽지가 놓여 있었다. 쪽지를 보니 사범대학에 진학하게 된 아이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선생님보다 더 훌륭한 교사가 돼 만나고 싶다고 적혀 있다. 나보다 더 훌륭한 교사가 되겠다는 암팡진 욕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얄밉고도 흐뭇하다. 이렇게 쪽지를 읽고 있는데 교무실 뒷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핼쑥한 얼굴의 한 녀석이 소리 없이 다가오더니, “선생님, 저 왔어요” 하면서 싱긋이 웃는다.
재수학원에서 공부하다 졸업식이라 왔단다. 언제나 성실했던 아이라 잘 됐으면 했는데 또 다시 힘든 한 해를 보내겠단다. 씩씩하게 말은 하지만 처진 어깨를 보니 안쓰럽다. 몇 마디 위로와 격려가 섞인 말을 하며 보내고 나니 마음 둘 곳이 없다.
창밖을 보며 마지막으로 학교를 둘러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데, 또 누가 부른다. 복도에 나가보니 눈물을 글썽거리며 한 아이가 울먹인다.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 보내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고 말을 잇지 못하며 운다. 며칠 전에 찾아와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하면 되냐고 천연덕스럽게 묻고 갔던 녀석이 이별의 섭섭함을 이렇게까지 슬프게 표현하니 또 아쉬움이 가득하다. 달래듯 웃으며 사진 한 장 찍고 보냈다.
한 아이와 힘겹게 이별하고 이제는 아이들 모두 다 갔으려니 했는데, 한 녀석이 헐떡거리며 달려와 인사를 한다. 들뜬 목소리에 사진 한 장 찍고 싶단다. 그리고는 대뜸 전화번호를 불러달란다. 좀 생뚱맞은 느낌이지만 그럴만하다 싶다. 이 친구와는 인연이 깊다. 이 친구의 누나 둘이 모두 다 나에게 배워서 삼남매가 제자가 됐다. 힘든 학교생활이었을 터인데, 이렇게 졸업하게 되니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로도 몇 명의 아이들이 더 찾아와서 함께 사진을 찍고 갔다. 휴대폰으로 이별의 메세지도 여러 개 왔다.
만남보다도 이별이 어렵다. 만남은 처음에 아무런 사연이 없었으니 어렵지 않았었는데, 이별은 많은 사연을 잊거나 기억하기 위한 일이라 어려운 것 같다. 졸업식 이후의 풍경이 더 아련한 것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힘겨움을 함께 이겨낸 모든 아이들에게 그 개별성과 구체성으로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