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혹시 시간 있으세요? 오늘 현준이 유치원 졸업식인데 오늘따라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요”
둘째 손주 녀석의 졸업. 안 그래도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탓에 어디로 도망을 갈까 궁리하던 차에 “내일 내려가겠다” 하고서 다음날 서둘러 아침을 챙겨 먹고 졸업식장으로 향했다.
어느새 유치원(오봉초 병설유치원) 졸업이라니,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니.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애들이 커가는 것만큼 우리는 늙어가지만, 말썽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니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맞벌이하면서도 뒷바라지를 잘 해내고 있는 며느리에게도 고맙고 감사하고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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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어릴 줄 알았더니 어느새 초등학생이 된 현준이. 여자라고는 없는 집안에 어지간한 여자아이보다 애교도 많고 말을 얼마나 똑 부러지게 잘하는지. “할아버지~” 하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하며 두 눈을 똑바로 뜨면 내가 쩔쩔맨다. 마누라는 겁이 안 나도 요 녀석이 뭐라고 하면 꼬리부터 내리니 이래서 할배, 할매는 손주 바보가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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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뭐 먹고 싶냐고 오늘은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는 할매의 말에 고민하는 척하더니 이마트에 있는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요 영리한 녀석이 장난감이 많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는 속셈을 모를 리가 없건만, 모르는 척 그렇게 하자고 했더니 신이 났다. 점심을 해결하고 더 하고 싶은 게 없냐고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꼭 갖고 싶은 게 있다고 녀석이 반색한다.
장난감이 있는 곳에 가더니 꼭 가지고 싶었던 거라며 동그라미가 몇 개나 되는 것을 집는다. 그러면서 형 것도 챙겨야 한다며 또 하나를 손에 쥐니 어쩔 도리가 없다. 얇아진 주머니가 더욱 얇아질 수밖에. 마누라가 이랬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겠지만, 눈웃음 살살 치는 요 녀석을 위해 쓰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튼튼하게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