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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아 시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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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고두현 시인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경남대국문과 졸업.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유배시첩〉연작이 당선돼 등단. 시집으로 『늦게 온 소포』(민음사, 2000)와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가 있음. 현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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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주제로 쓴 시는 언제나 가슴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이 시는 서울에 사는 화자가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화자는 밤늦은 귀가 길에 남쪽의 어머니께서 보내신 소포를 받았나 봅니다. <남해산 유자 아홉 개>와 아들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편지. 포장된 <몇 겹의 종이>는 <낯선 서울 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과 중첩되면서 타향살이에 힘들었던 화자의 마음을 보여주네요.
맞춤법은 틀리지만 아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그대로 보여주는 어머니의 편지는 제 어머니가 제게 보내신 말씀 같아 가슴이 울컥, 하는군요. 내다본 창밖으로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는 새벽, <남향의 문을 닫지 못하고> 울먹이는 화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건너와 저도 눈물 글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