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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교단일기]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이유..
오피니언

[교단일기]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이유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4/03/25 10:36 수정 2014.03.25 10:36



 
↑↑ 유병준
범어고등학교 교사
 
새 학기가 시작돼 새로운 학생과 만나면 교사나 학생이나 처음에는 긴장한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에서 지켜야 할 원칙 같은 것을 먼저 세운다. 서로 좋은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를 맺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를 맺기도 전에 수업 시작부터 꼬이는 일이 발생했다. 출석 확인을 위해 이름을 불러도 대답을 잘 하지 않고,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인데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자고 있는 학생이 있다. 두 세 번을 깨워도 반응이 없어서 큰 소리로 야단을 치며 깨우고 일으켜 세웠더니 굉장히 화난 표정으로 일어서 말한다.

“샘, 저는 공부 안 하는대요. 가만 놔 두지요?”

“그래도 첫 시간이고 처음부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이가?”

“수업에 방해만 안 되면 되잖아요?”

“교과서는?”

“공부 안 하는데 교과서가 왜 필요해요? 반납했어요”

할 말이 없다.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참 난감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겪고는 교무실로 돌아와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근본적인 성찰을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학교에서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심증은 확실해지고 있다. 굳이 통계 자료를 찾지 않더라도 수업 상황에서 보면 그렇다. 학생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생활지도나 학력향상을 위한 여러 가지 해결 방법을 적용하고 있지만, 실제 구체적인 장면에서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학생을 체감하는 정도는 훨씬 심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 것도 안 하며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으려는 아이와 만나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를 만들기란 어렵다. 수업을 시작해도 미동도 없이 자고 있고, 깨우면 왜 깨우느냐고 항의하면서 자신은 최소한 수업에 방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는 아이를 어떻게 배움으로 이끌 것인지가 문제다.

도대체 왜 아이들은 배움으로부터 도피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일본의 우치다 다츠루는 ‘하류지향’이라는 책에서 아이들이 이미 ‘소비주체’로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학교는 유용성과 의의를 알 수 있는 상품을 다루는 곳으로 아이 또한 소비자처럼 최소한의 대가로 상품을 손에 넣으려는 요령을 익히고 있다는 설명이다.

학교는 학력이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고 학생은 학력을 구매하는 소비자라고 이해하면, 공부하지 않고도 졸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고 아이들이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설명이다.

아무튼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이유를 알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거기서부터 교육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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